설문조사 결과 국선료 4억여원 연체된 것으로 밝혀져
법원 “예산삭감 때문, 내년도 예산 55억원 증액할 것”
대한변협 “국선변호사 제3의 독립기관에서 관리해야”

# A변호사는 개인변호사사무실을 운영하며 국선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무실 운영도 빠듯한 상황이지만, 국선변호를 통해 변호사로서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국선변호료가 지급되지 않고 있다. 국선변호 한건당 지급되는 금액은 30만원 남짓. 사건 배당 수가 줄어들까봐 연체된 금액에 대해 법원에 항의할 수도 없어 지급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보수를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수개월간 십여건의 사건에 대한 변호료가 연체되다 보니 걱정이 된다.

최근 A변호사처럼 국선변호료를 수개월씩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가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전국 회원에게 공문을 발송해 국선변호인을 대상으로 ‘국선변호료 연체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약 95%가 ‘연체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산·대구·광주·수원·대전지방법원 등에서 국선변호료가 연체된 건수는 1300여건, 금액으로는 4억여원에 달했다.

응답 중 연체 건수가 가장 많은 법원은 울산지방법원으로 216건, 약 6500만원이 연체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그 다음으로는 대법원이 138건, 약 4300만원으로 연체 금액이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 중 46.4%가 1~5건, 16%가 6~10건, 26.3%가 11건 이상의 국선변호료가 연체됐다고 응답했고, 너무 많아 알 수 없다고 응답한 이도 6%에 달했다.

게다가 대법원은 국선사건 비용도 일방적으로 감액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진행됐던 변협과 대법원과의 정기간담회 자료에 따르면 2014년의 국선변호인 기본보수는 본안사건당 30만원, 구속영장사건은 15만원으로, 대법원은 이날 간담회에서 국선변호인 보수의 실질화를 위해 노력 중이며 2015년부터는 1심 형사합의사건은 40만원으로 증액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진행된 제24회 변호사대회의 ‘국선변호인/법률구조제도’ 심포지엄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대법원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구속영장사건의 기본보수를 15만원에서 10만원으로 감액했다.

한 설문조사 응답자는 “국선사건은 단독사건, 합의부 사건, 영장실질심사 및 구속적부심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영장실질심사의 기본금액이 지난 7월부터 기존 1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줄어들었다”며 “게다가 이전에 지급됐던 주말 50% 가산금액도 없어졌고, 상한을 둬 몇 시간을 할애해 일을 하더라도 상한금액까지만 받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국선변호제도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는 서민, 저소득층 등일 경우 법원이 국가 비용으로 변호인을 선임해주는 제도로, 국선전담변호사와 일반 국선변호사가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기존 국선변호사제도의 단점 보완을 위해 2004년부터 도입됐다. 국선전담변호사는 법원과의 위촉계약에 따라 2년간(재위촉 가능) 사선사건은 수행하지 않고 국선변호만 전담하며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받는데, 600~8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제도 시작 당시 11명이었던 국선전담변호사의 수는 지난해 229명까지 늘어났다.

문제가 된 국선변호료는 일반 국선변호사에 해당한다. 관할 법원은 국선변호사를 신청한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사건을 배당하게 되는데, 사건을 배당받은 변호사는 사건당 일정 보수를 지급받게 된다.

대법원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지난해보다 국선변호인 예산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라며 “책정된 예산은 제대로 집행했으며, 미지급분은 하반기 중에 모두 지급하겠다”고 해명했다.

국선변호 선임건수 매년 증가 추세, 그에 비해 예산 전년도보다 감소해

법원의 해명대로 국선변호사 지원 예산은 2011년 488억원, 2012년 542억원, 2013년 516억원, 2014년 540억원에서 올해는 469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국선변호사 지원 예산이 500억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국선변호사 선임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오히려 예산은 줄어든 것이다.

국선변호사 선임 건수는 2011년 10만1672건, 2012년 10만9571건, 2013년 11만1373건으로 나타났으며 2014년에는 1만3461건이 증가한 12만4834건이었다. 올해도 7월까지 국선변호사 선임건수만 7만5939건으로 지난해보다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의 국선변호사 지원 예산은 일반회계로 구분된 국선변호료 지원과 공탁출연금으로 이원화 돼 있는데, 보통 일반회계 6 공탁출연금 4의 비율로 구성된다.

올해 국선변호 지원금이 줄어든 것은 일반회계 국선변호료 예산이 지난해 335억원에서 올해 293억원으로 크게 줄어든데다, 공탁출연금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공탁출연금 규모는 전년도 보관은행의 공탁금 운용 수익 중 업무원가 등을 차감한 금액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금리하락으로 인해 그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

대법원은 “영장실질심사의 변호인 보수를 하향조정하고 불필요한 사건에 변호인 선정을 자제하기를 권고했다”며 “내년도 예산안에는 50여억원을 증액하기로 기획재정부과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국선변호사에 대한 문제가 지속되자, 대법원에서 관리하는 국선변호사제도를 제3의 기관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재판장은 분기별이나 반기별로 국선변호인의 활동에 대한 평가서를 작성해 법원장에게 제출하고, 법원장은 평가서를 기반으로 국선변호인을 평가하게 된다. 대법원의 평가를 받는 입장이다보니 국선변호인은 보수가 미지급돼도 법원에 항의할 수 없는 입장이다.

또 국선전담변호사의 경우, 해당 재판부의 평가에 따라 해촉이나 재계약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재판부의 성향을 거슬러 적극적으로 변론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 변론의 독립성 보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대한변협 이진욱 사업이사는 “제3의 독립적인 기관으로 국선변호인제도를 통합한다면 가장 중립적인 위치에서 국선변호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며 “다양한 기관에서 공동으로 운영에 참여한다면 견제가 이뤄져 투명한 운영도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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