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런던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런던에 머물 집을 서울에서 미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 직장 동료로부터 런던에 계신 천주교 수사님을 소개받아 도움을 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수사님은 즉시 “제가 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걱정마세요.” 간명한 한 줄 답장을 하고, 생면부지의 나를 위해 런던에서 직접 보증금까지 지불하며 셋집을 얻어 주었다.

이후 내가 런던에 도착한 때부터 서울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수사님은 온갖 잡다한 일들과 어려운 일들을 앞장서고 도맡으며 런던에서의 내 후견인 노릇을 해주었다.

수사님이 계약해 준 런던의 셋집은 학교에서 버스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월세에 비해 보증금이 비싼 편이었다. 런던 도착 후 대신 지불해 준 보증금을 드리려 하자, 수사님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집주인에게 받겠다고 부득불 사양하였다.

그런데 내가 런던 생활 시작한 후 오래지 않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폭탄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의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고, 런던시내의 교통은 마비되었다. 유일한 지인이었던 수사님은 해외 연수중이라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날 저녁 예정되어 있던 변호사 파티 때문에 신고 간 드레시한 하이힐을 벗어 손에 든 채 맨발로 여러 시간을 걷고 또 걸어 집을 찾았다. 어둠이 깔리자 하이힐과 책가방을 들고 맨발로 걷고 있는 동양여자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불량스러워 보이는 젊은이가 한손으로 잭나이프를 빙빙 돌리면서 놀려대며 따라왔다. 불안 속에 벗겨지고 부르튼 발을 재촉하며 겨우 집에 들어왔는데, 집 앞까지 따라온 젊은이가 1층에 위치한 내 방 침대 옆 창문을 두드려 댔다.

불안 속에 밤을 보낸 후, 나는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는 장학재단 International Students House(‘ISH’)의 교장을 찾아가서 통사정을 하며 하소연을 한 끝에 바로 당일 영국식 아파트(flat house) 입주허가를 받아냈다. 몇 달씩 대기자가 밀려 있어서 즉시 입주하지 않으면 허가가 취소된다는 조건이었으므로, 그날 즉시 이사를 시작했다. 예전 셋집에서는 갑작스런 나의 퇴거에 보증금 전액을 몰수하였다.

런던에 가져간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새 집 보증금으로 내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이사 후 수사님을 만나, 보증금이 몰수되었는데 당장 돈이 없으니 나중에 갚겠다 뻔뻔히 말하였다. 그리고 귀국하던 날 공항에서야, 그동안 난방비와 식비까지 아껴 모은 돈을 봉투에 담아 수사님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수사님은 봉투를 든 내 손을 완강히 밀어내었다.

“그 돈은 처음부터 제 것이 아니고 하느님 것이었어요. 하느님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니, 하느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세요.”

“수사님 저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잖아요. 수사님이 받아서 교회에 드려주세요.”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 하느님께 드리는 겁니다. 하느님이 그러라 주셨으니까요. 제가 그 돈을 다시 받으면 하느님이 맡긴 일을 못한 것이 돼요.”

실랑이 끝에 나는 결국 부끄러운 손을 거두었다. 신앙심에 바탕한 사랑을 돈으로 갚으면 다인 줄 안 것이 돈을 갚지 못한 뻔뻔함 보다 더 부끄러웠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라던 수사님의 말에 피동적 감사를 넘는 능동적 공감을 하게 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관계와 애정에 대한 실망과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후로도 여러 차례 겪은 후에야, 나는 비로소 런던에서 수사님이 해준 그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이, 어려운 순간 홀연히 친절을 베풀고 사라져간 사람들이 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준 사람, 비오는 날 우산을 씌워준 사람, 급히 올라탄 택시에서 요금이 부족했는데 웃으며 목적지까지 태워다준 기사, 길에서 멈춰 버린 차를 밀어준 사람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그들은 누구도 나에게 보답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라진들 내가 받은 빚이 사라졌을까. 다른 누군가에게 갚아야 할 사랑의 빚. 받은 것을 베푼 사람에게 갚아버리면 둘만의 채권채무로 끝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갚으면 세상이 공유하는 사랑이 된다. 그렇게 함께 살라고, 하느님은 내게 그 많은 천사들을 보내주지 않았을까. 베푼 것은 잊어도 받은 것을 기억하면 나도 누군가의 천사가 될 수 있다.

히드로 공항에서 수사님과 그렇게 헤어지고 8년 후, 나는 카톨릭 신자로 세례를 받았다. 조금 더 빨리, 조금이라도 더 하느님의 빚을 갚을 길을 배울 수 있을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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