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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듣다]과잉성의 압력
김성기 변호사  |  ksk@sw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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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승인 2015.08.24  10: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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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희소성(稀少性)의 해결’을 위한 수단이 오히려 ‘과잉성(過剩性)’의 문제를 불러 왔다. 지금은 이 방법적 실패에서 빚어진 ‘과잉성의 처리’로 고민하고 있다. 변호사의 대량생산은 이미 이 시대의 절대적 윤리가 되었고 이에 어긋나는 변호사의 사고와 행동은 과거 희소성의 시대의 법비(法匪)로 회귀하려는 반동적 퇴행(退行)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일부 알량한 자칭 지혜인들은 변호사의 수를 늘리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선적이고 기계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수요에 대한 공급부족이 변호사를 법비로 만들었으니 공급을 늘리면 된다는 교과서적인 사고가 그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묘안(妙案)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묘안이라는 것은 독(毒)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범안(凡案)이 아닐 뿐이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묘안이 실패했을 때 나타나는 독이 범안에 비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해서 대사(大事)를 앞에 놓고는 함부로 묘안이라는 것을 들먹거려서는 안 된다는 지혜를 갖지 못했다. 또 그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번도 교과서를 의심해 본 일이 없다. 교과서를 의심한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데. 따라서 그들에게는 변호사의 대폭 증가의 불가피성에 대해 세상과 변호사를 납득시키는 노력이 부족했다.

지금 그 지혜인들의 과오를 지적하거나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을 마치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의 대리자인양 착각하고 저지른 허물을 깨닫기까지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니까. 그러나 과잉성의 공포가 이미 현실이 된 이상 그 공포로부터의 해방은 변호사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일이다. 변호사 제도는 전 인류가 이룩한 문화이고 문명이기 때문이다.

현재적 과잉성이 두려운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잠재적(潛在的) 과잉성이다. 앞으로도 끝도 없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현재적 과잉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잠재적 과잉성의 공포가 변호사로 하여금 변호사 수의 축소라는 국소적인 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변호사는 아직도 과잉성의 의미를 모른다. 과잉성이라는 것이 단순한 숫자의 증가라고만 생각한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은 변호사의 유용성(有用性)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거부인 것이다. 따라서 숫자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유용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와 신뢰의 경향적 저하가 훨씬 큰 문제이다. 이것이 ‘과잉성의 압력’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 눈을 돌리는 사람은 없다. 오로지 변호사가 죽음의 실무가가 되고 말 것이라는 비명, 그것이 변호사 사회의 내향적 논리가 되어 자가 중독증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면 이 과잉성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나는 ‘낭비’라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이라는 길이 아니겠는가.

낭비라는 것은 ‘탕진’을 의미한다. 알기 쉽게 말하면 ‘버리는’것이다. 변호사라는 인재(人材:Human Resourse)를 버리는 방법에 의해 과잉성을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오해가 두려워 한 마디 덧붙이는데, 변호사가 특별히 우월한 존재이어서 인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숨을 쉬며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바로 인재인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일도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으니까.

한편 성장은 ‘키우는’것 그리하여 ‘자라는’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 노력은 ‘힘의 합성(合成)’으로 나타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힘의 합성이라는 말은 단순한 힘과 능력의 덧셈에 의한 총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상승효과 즉 폭발력을 의미한다. ‘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변호사 사회를 관통하는 사고(思考)의 합일이 꼭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제로 변호사의 수만 줄이면 만사 해결된다는 집단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 그리고 앞에서 말한 우리 사회의 변호사에 대한 유용성의 거부가 유용성의 실망에서 온 것임을 분명히 깨닫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변호사가 우리 사회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인재(人財:Human Capital)로서 대접 받을 수 있는 길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버리는’ 길과 ‘키우는’길 그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를 선언해야 하고 또 변호사는 ‘버림을 당하는 길’과 ‘성장하는 길’ 그 어느 길을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선택한 길을 우리 사회에 공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사회의 감독과 질책을 받아야 한다. 그것을 피해서도 안되고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이 길이 변호사가 그저 그런 법률기술자가 아닌 당당한 법률가임을 세상에 알리는 존재선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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