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도착하여 오전 업무를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름휴가를 앞두고는 항상 바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어, 언니네. 급한 일이 아니면 업무시간 중에는 동생 일 방해할까 봐 전화도 좀처럼 안 하는 언니가 무슨 일일까? 얼른 전화를 받았더니, 아침드라마를 보다가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무슨 얘기인가 들어보니, 궁금해서 물어본다는 것의 실체는 아침드라마에 등장하는 변호사 캐릭터가 이상하다며 변호사가 이런 일도 하느냐는 성토였다. 시간에 쫓기며 일하던 나는 “그 드라마작가가 뭘 몰라서 그런 거겠지. 변호사가 그런 일을 왜 해? 감옥에 들어갈 일 있어?”하고는 시간될 때 나도 그 드라마 한번 보겠다고 하고는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그 드라마가 떠올랐고 궁금해져서 인터넷에 그 드라마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어느 종합편성채널의 아침드라마였다. 표독스런 성격의 여주인공이 자신만 살겠다고 남편과 이혼하고 남편의 전 재산을 챙겨 해외로 나간다. 하지만 남편은 착한 새 부인을 얻어 재기에 성공하였고, 혼자 살겠다고 해외로 갔던 여주인공은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되어 다시 귀국한다. 여주인공은 다시 전 남편에게 접근하고 결국은 또다시 자신이 살기 위해, 전남편의 아내를 살해하고 그 누명을 전남편에게 뒤집어 씌워 감옥에 가도록 만든다.

이때 문제의 변호사가 등장한다. 이 변호사는 사악한 여주인공의 부탁을 받고 (물론 수임료도 받고), 남편의 변호인으로 선임되어 구치소로 가서 접견을 하는 척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그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누명을 벗기 위해 무슨 계획을 짜고 있는지 등 일거수일투족을 여주인공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언니가 분개한 장면은 이 장면이었던 것 같다.

나도 분개했다. 아니 변호사를 뭐로 보고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 변호사가 무슨 협잡꾼이야? 그동안 변호사를 나쁜 사람으로 그린 드라마나 영화는 종종 있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인간, 돈만 밝히는 사람, 위선적인 인간…등등. 그러나 이 드라마의 경우에는 명백히 불법적인 일임을 알면서도 여주인공의 범죄행위에 도움을 주는 위법행위를 아무런 갈등이나 죄책감 없이 감행하는 인간으로, 돈을 벌기 위해 범죄행위에 협조하는 자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사실 변호사들이 범죄에 연루되어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드라마에서 변호사라는 직업군에 대해 이렇게 그리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내 머리 속은 바빠졌다. 해당 채널을 운영하는 방송사에 거칠게 항의를 할까? 개인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협회차원에서 항의하도록 건의를 하는 것이 나을까?

혼자 분개하고 분주해하던 사이, 나의 전의(戰意)를 사그라들게 만드는 뉴스가 터졌다. 이 신문 저 신문, 이 방송 저 방송 할 것 없이 ‘집사변호사’ 문제로 시끄럽다. 법무부가 지난 4월 한달간 구치소 접견을 100회 이상 한 변호사 가운데 10명에 대해 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요청하였다는 소식이었다. 변호사가 구속된 권력자나 재력가의 접견을 통해 심부름을 해 오던 데서 유래된 집사변호사라는 말. 이젠 일반인의 옥바라지를 하는 집사변호사까지 생겼다, 어떤 여자변호사는 집사변호사로 이용당하기 위해 고용되어 짧은 치마를 입고 접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떤 변호사는 사탕을 가져다 주다가 발각되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너무 많은 변호사의 배출로 인한 과당경쟁과 선배변호사들의 어린 변호사에 대한 착취가 자리잡고 있다고도 한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로 ‘집사변호사’를 치면 관련 검색어가 여자 집사변호사, 과자변호사, 사탕변호사, 배고픈 변호사, 굶주린 변호사라고 나온다. 2015 변호사 업계의 슬픈 단면이다.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점차적으로 늘리고 그것도 모자라 로스쿨제도를 도입했다. 우리 사회의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적정한 변호사의 수에 대한 고민 없이 법조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절체절명의 슬로건 아래 변호사 업계는 단기간에 과포화상태가 되었다. 아직도 변호사들은 연간 정해진 시간의 공익활동을 하고 품위유지의무를 지켜가면서 업무를 보아야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집사변호사 문제로 인해 인터뷰를 하면서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집사변호사의 문제는 단순한 변호사의 타락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의 불황이 가져온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아침드라마 속에 나온 막장변호사의 모습이 드라마작가의 무지나 오해의 소치가 아니라 무척이나 리얼한 현실적 표현이 되어버린 현재의 이 상황을 어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금번의 집사변호사 사건이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큰 방향성의 지표인 것 같아 더욱 가슴이 답답하다. 변호사가 즐거운 마음으로 공익활동을 하고 품위유지를 하면서도 배가 고프지 않을 수 있는 시절이 다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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