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국가부도위기로 몇 달 동안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그리스는 서양문명의 원류로 철학, 문학, 예술, 인문학 분야에서 찬란한 고대문명의 꽃을 피웠지만 로마 시대 이후로는 외세의 침략과 약탈로 비극적인 역사를 계속 써 내려오고 있다. 동로마로 편입된 후 그리스의 찬란한 고대 유적과 유물은 기독교적 우상파괴의 대상으로,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부터는 천대와 약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몰락한 나라의 국민은 선대가 이룩한 유적을 지켜낼 힘이 없다. 이는 우리가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는 과정에서 국가의 보물이 불타고 약탈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일제 식민지 시절 힘이 없거나 무지해서 빼앗긴 그 많은 보물들의 운명을 알기에 그리스의 약탈문화재 문제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리스 약탈문화재의 상징은 엘긴 마블의 반환 문제이다. 엘긴 마블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벽화 조각들이다. 엘긴이 뜯어간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품은 75미터에 달하는 벽면 프리즈 부조 장식과 박공벽에 설치된 17개의 조각상, 기둥 상단에 전시되어 있던 메토프 15개 등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엘긴은 1801년에서 1807년까지 몇 차례 나누어 이를 영국으로 반출해갔고 런던에서 전시했다. 하지만 엘긴은 자금난과 이혼 등으로 인해 현금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엘긴 마블 전체를 영국 정부에 팔기로 한다. 1816년 영국 의회는 엘긴 마블 매수가격으로 35만 파운드를 결의했고, 그 이후 엘긴 마블은 대영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게 되었던 것이다.

엘긴 마블이 영국에 남아 있는 것이 정당하다는 영국 정부측의 근거는 엘긴 경 토마스 브루스가 오스만 제국의 영국대사로 부임하면서 오스만 투르크 당국으로부터 파르테논 조각상들을 반출하는 것에 관해 적법한 허락을 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엘긴 경이 오스만 당국으로부터 받은 허락의 범위가 파르테논 조각상을 무차별적으로 반출하는 것까지 포함하는지, 그리고 설사 허락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배 상태하였으므로 오스만 투르크 당국의 허락은 그리스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므로 효력이 없다는 주장과 상반된다. 엘긴경이 오스만 투르크 당국으로부터 받았다는 허가서 원본도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조지 클루니와 아말 클루니
그리스는 1821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줄기차게 영국 정부를 상대로 엘긴 마블의 반환을 요구해왔다. 상당수의 영국 국민도 엘긴 마블의 그리스로의 반환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고 전세계 많은 지식인들이나 유명인들도 위 반환을 지지하고 있다. 반출 당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 경은 엘긴경을 반달(vandal)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지난 해 그리스 정부와 영국 정부 양측에 엘긴 마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조정을 해볼 것을 요청하였으나 영국 정부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한편, 올해 5월 아말 클루니라는 영국의 유명한 인권변호사는 그리스 정부에 엘긴 마블 문제를 국제재판소로 가져가자고 제안한다. 아말 클루니는 할리우드 스타인 조지 클루니의 부인이기도 하다. 옥스포드 출신의 유명한 인권변호사로 위키리스크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를 변호한 적도 있는 그녀다. 아말 클루니는 150페이지에 달하는 소송 전략 보고서를 그리스 정부에 제시하였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리스 정부는 영국을 상대로 한 법적인 소송을 채택하지 않고 다만 외교적이고 정치적인 방안으로 통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겠다면서, 아말의 제안을 바로 거절하였다.

소송에서 패소한다고 하여 외교적이고 정치적인 해결방안이 봉쇄되는 것도 아닌데 그리스 정부가 법적인 해결방안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렵다. 영국은 여전히 엘긴은 더 이상의 손상이나 파괴의 위험으로부터 조각품을 구해낸 것이고, 엘긴 마블은 그리스 국민 것만 아닌 전세계인의 보물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엘긴경이 뜯어가지 않았다면 그 조각품들의 운명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기도 하지만 왠지 영국의 논리는 떨떠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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