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법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만 불쌍한 거죠.”

며칠 전 기자와 전화 통화를 한 한 로스쿨 교수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연일 이어지는 ‘사법시험 존치’ 논쟁을 둘러싼 한탄이다. 그럴 만도 하다. 로스쿨 제도를 통해 지난 4년 동안 수천명의 변호사를 배출했을 만큼 버젓이 시행되고 있는데, 2017년 폐지되는 사시의 존치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로스쿨 제도는 ‘현대판 음서제’라고 비판받는 반면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은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옹호하는 수호자로 여겨진다. 오랜 시간 평행선을 걷고 있는 논쟁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2009년 로스쿨에 입학한 이들이 3년 뒤 첫 변호사시험을 치른 이래 ‘사시’와 ‘변시’는 법조인 배출 창구로서 4년째 동거 중이다. 하지만 사시와 달리 변시에 대해선 이런저런 말이 많다.

최근에는 ‘변시 성적 공개’ 이슈가 뜨거웠다. 이를 먼저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일부 로스쿨 재학생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변시 성적 공개를 금지한 변호사시험법 조항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변시 성적 비공개는 자신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변시 출신 변호사의 공직 임용 과정이 불공정하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법원과 검찰이 엄격한 과정을 거쳐 임용 대상자를 선발하는 만큼 그 절차가 공정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사시와 사법연수원 성적이라는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판·검사가 되는 사시 출신에 비해 변시 성적 공개 없이 로스쿨 출신 판·검사 선발 과정에 자의적인 변수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객관적 기준이 없기에 소위 SKY 대학 등 명문대 로스쿨 출신이나, 전·현직 판·검사 부모를 둔 법조 명문가 자제들이 유리할 것이란 우려다. 올해 처음 로스쿨 졸업 후 3년간 법조 경력을 채운 변호사들이 경력 법관에 채용되는 과정에서 몇몇 임용 대상자를 두고 이런 걱정이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 결국 헌재가 변시 성적 비공개 조항은 위헌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지난 9일부터 법무부가 1∼4회 변시 성적을 응시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쯤 되면 문제가 해결된 걸까. 오히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변시가 공직자 임용의 객관적인 자료로 활용되면 출신 학교의 서열에 관계없이 공정경쟁이 이뤄질 수도 있다. 하지만 향후 법학도들이 법조인의 자질을 쌓기보다 변시 공부에 매진하는 부작용을 불러올 것도 같다. 변시도 사시처럼 고득점을 위한 과다경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자는 사시와 변시가 공존하는 한 이런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제로섬게임인 셈이다. 여전히 기성 법조인들에게도 사시 출신은 ‘적자(嫡子)’, 변시 출신은 ‘서자(庶子)’처럼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소수라도 사시가 유지되는 경우 사시 출신의 법조인들이 ‘엘리트 집단’을 이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두루 갖춘 법조인을 배출한다는 게 로스쿨 도입의 본래 취지다. 로스쿨 제도는 사시라는 획일적인 법조인 배출 방식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낳은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박병대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최근 국회에서 사시 존치 논란 관련 질문에 “로스쿨 출신이 아니어도 변호사가 되는 길을 터주는 것과 별개로 변시와 사시를 함께 두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했다. 개인 의견이라고 못 박았지만, 사시 폐지에 무게를 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읽힌다. 박 처장은 이와 함께 “당초보다 로스쿨의 장학금도 기대에 못 미치고 법 실무교육이 미진한 문제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1920년대부터 로스쿨 제도가 정착한 미국에서도 빈민가에서 자라 명문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존경받는 판사가 된 인물이 있다. 미국 역사상 첫 히스패닉계 대법관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얘기다. 현행 로스쿨 제도에 여러 문제점이 있고, 로스쿨 제도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로스쿨 제도를 통해 앞으로도 매년 1500여명의 신참 법조인이 배출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하지만 2년 뒤 ‘사형집행’을 앞둔 사시를 되살려야 한다는 논쟁에는 사실상 법조인 양성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 법조인들,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미 법조인이 되고자 절차탁마하고 있는 다수의 로스쿨생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법조인이 되려는 이들에게 로스쿨 교육의 기회를 어떻게 제공할지 등을 논의하는 데 힘을 모았으면 한다. 향후 한국에서 로스쿨 제도를 통해 소토마요르 대법관 같은 인생 성공 스토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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