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은 장관들을 언제나 쉽게 만난다. 장관들의 집무실은 백악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안에 있다. 랭리에 있는 CIA가 예외로 보일 정도다. 영국도 총리가 있는 다우닝가 10번지 바로 옆에 재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이 있고 인근에 다른 각료들의 집무실이 있다. 일본도 그렇다.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수뇌부는 함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토론은 쉽게 이루어지고 결정은 빠르다.

당연히 시행착오도 적다. 국가가 위기에 봉착했거나 위험에 빠졌을 때 물리적인 환경으로 인해 대응능력이 손상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은 장관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길거리에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 청와대에서 한참 떨어진 과천의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옮겨가면서 더 멀어졌다. 이 바람에 세종로에 정부 서울청사가 있고 장관들은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진 서울 집무실을 가지고 있다. 총리는 물론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주요 부처 장관들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만 세종시에 있을 뿐 대부분 서울에 있다. 총리는 서울과 세종시에 모두 공관이 있을 정도다.

더 놀라운 건 서기관급 이상 고급공무원의 절반이 서울에 있거나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가 열릴 때에는 그 비율이 훨씬 높아진다. 이건 ‘행정의 비효율’이 아니라 ‘행정의 낭비’다.

이런 느려터진 ‘국가의사결정 구조’로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라고 외치는 배짱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세종시 브랜드 홍보가 걸작이다. ‘세상을 이롭게,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 행복도시’가 그것이다. 정말 그럴까? 세종시가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을까?

작년 4월 16일 아침 8시 58분 세월호는 침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368명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허위사실이 보고됐다. 막상 현장에선 침수가 시작되고 1시간 동안 승객이 탈출해야 하는 ‘황금시간’을 허비했다. 해경 구조인력이 도착했지만 아무도 배에 갇힌 승객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2시간 20여분이 지난 11시 20분 세월호는 수심 37미터 바다에 침몰했고 이튿날 아침 7시에야 첫 번째 잠수부가 투입되었다. 침몰 후 하루 동안 이 정부가 우왕좌왕한 것은 가히 ‘기록적이다.’ 대통령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구조하라’고 독려했고 언론은 에어포켓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연신 보도했지만 결국 희망에 그쳤다.

올해 5월엔 메르스가 덮쳤다. 메르스에 감염된 채 귀국한 1번 환자는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과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서울삼성병원에서 이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된 것을 안 뒤에도 보건당국은 평택성모병원의 해당 병동 전체를 격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1번 환자가 입원했던 병실로만 격리대상을 국한했다.

질병관리본부는 태연히 체육대회를 열기까지 했다. 보건복지부는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홈페이지에 있는 대로 ‘환자와 2미터 내 밀접접촉’을 하지 않았으면 안심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더 기가 막힌 건 메르스를 예방하기 위해 낙타를 만지지 말고 낙타 고기를 먹지 말라는 복지부의 홍보였다.

세월호든 메르스든 백서는 나오겠지만 나는 그 백서가 진실을 적지 못할 것이라는 데 걸겠다. 세월호의 경우 해수부와 한국선급, 해운조합, 선박회사 그리고 해경이 얽힌 커넥션인 이른바 ‘해피아’가 원인일 수 있다. 무능한 관료들이 벌이는 관료주의가 원인일 수도 있겠다. 선박입출입법 같은 법안을 제때 처리하지 못한 썩어빠진 국회가 원인일 수도 있겠다.

메르스는 또 어떤가? 역시 나사 풀린 관료조직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외엔 보건전문인력은 거의 없는 복지부가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태를 키우고 피해를 확산시킨 진짜 원인은 현저히 약화된 국가위기 대응능력이 아닐까?

해경을 지휘하는 해수부는 세종시에 있고, 장관은 서울에 있었다. 메르스 방역을 책임지는 질병관리본부는 오송에, 복지부는 세종시에 있고 장관은 역시 서울에 있었다.

설사 관료들이 관료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나사가 풀려 있지 않아도 국가적 위난에 대처할 수 있었을까? 무능한 장관은 서울에서 텔레비전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잃은 생명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가? 무너진 국격과 국민들의 자존심, 그리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은 측량할 수도 없다. 그 모든 것들은 세종시를 만든 명분을 덮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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