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탁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TV뉴스를 본 마누라가 뭔가 못마땅한 듯 한마디 한다. 모 정당의 최고위원들이 모인 회의석상에서 자기들끼리 한쪽에서는 “사퇴하라!”고 닦아세우고, 반대편에서는 “공갈치지 마라!”고 윽박지르다가 뛰쳐나가는 험악한 회의분위기에서 어느 여성 위원이 뜬금없이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사진을 보니 그 위원은 핑크색 정장까지 갖춰 입고 있던데, 그런 자리에서 노래를, 그것도 ‘봄날은 간다’와 같은 약간은 흐느적거리며 나른하게 들리는 노래를 부르다니…. 울고 싶은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나에게도 울면서 노래를 부른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 4학년쯤, 무슨 모임이었는지 친척들 여럿이 함께 모여 빙 둘러앉은 가운데 아이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한곡씩 부르고 노래가 끝나면 어른들이 손뼉을 치며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는 그런 자리가 있었다. 숫기가 없어 남 앞에 나서기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래에는 솜씨도 취미도 없었던 나는 맨 뒷자리로 물러나 다른 사람의 등 뒤에 숨듯이 웅크리고 앉아서 제발 내 순번이 돌아오기 전에 그 ‘노래 돌리기’가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어김없이 내 차례가 돌아오자 할 수 없이 엉거주춤 일어나 학교에서 배운 노래 하나를 부르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꽁무니를 빼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노래를 부르라고 강요하는 어른들을 야속해 하며 ‘노래 반 울음 반’으로 고집스럽게 끝까지 다 불렀지만, 덕분에 떠들썩하게 흥겨웠던 분위기가 서먹서먹하게 되고 그만 판이 깨어지고 말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노래에는 별로 취미가 없어 흔히들 가는 노래방에 내 스스로 찾아가는 일은 거의 없다. 어쩌다 일행과 함께 어울리는 판에 끼어 마이크를 잡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서로 술잔이라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나 나누는 것이 더 편안하다. 그런 형편이니 아무래도 그 속내가 은연중에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인지 어쩌다가 노래방 자리에 여성이라도 합석해 있을 때에는 “무슨 일로 화가 나 있느냐?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느냐?”는 식의 생뚱맞은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런 나도 혼자 있을 때나 자동차 운전을 하다가 무심히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 수가 있으니 그 가운데 제일 단골 노래가 바로 ‘봄날은 간다’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자연에 춘하추동이 있듯 인생에도 봄가을이 있어, 봉긋 솟아나 꽃처럼 아름답게 피던 사랑도 어쩔 수 없이 허망하게 사라짐을 노래한 것이다. 대중가요 가사 하나에 이처럼 심오한 인생의 무상함이 다 들어있으니 나같은 노래치 조차도 흥얼거리게 되는, 누구라도 좋아하는 국민노래가 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헌데, 그 여성 위원은 왜 회의 석상에서 그 노래를 천연덕스럽게 부르게 되었을까? 아까운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되는 일 없이 싸움박질만 하고 있으니 허망해서 울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꽃이 지기 전에 어서 화합하라는 점잖은 꾸짖음이었을까?

그렇게 이해한다 해도 그 자리에서의 그 노래는 시의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티격태격 이전투구의 싸움판 정당회의 자리에서 부르기에는 너무 느긋하고 감상적이다.

삼국지에 보면 ‘칠보시(七步詩)’라는 중국시가 나온다. 위(魏) 문제 조비가 그 아우 조식을 시기하여 죽이려 함에 조식이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어 바침으로써 조비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시이다.

그 시를 읊었더라면 극언과 막말로 떠들던 당사자들이 모두 조비처럼 자신의 경솔한 처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반성한 나머지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아쉽다.

‘煮豆燃豆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콩대를 때서 콩을 삶으니 /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구나 / 본디 한 뿌리에서 났는데 / 불 때어 달이기를 어찌 그리 서두르는고’

울면서 읊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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