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모처럼 혼자 먼 길을 나선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고 흥얼거리며 국도를 탄다. 밀린 사건들은 저 너머로 보내놓고 잠시 떠나는 여행…은 아니고, 오늘은 마을변호사 정기방문을 하는 날이다.

마을변호사의 일은 의사들이 무료 왕진하는 것과 비슷하다. 도시까지 방문하기 어렵고, 인터넷을 사용할 줄도 모르는 시골 어르신들을 위해 법률상담을 해 드리는 것이다. 처음에 이 일을 지원했을 때는 전화상담, 인터넷 등 편한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고 하였는데, 막상 시골어르신들은 그러한 방법을 이용하기 매우 어려워하셔서 올해부터는 큰 맘 먹고 월 1회 내가 직접 마을로 찾아가 방문상담을 해드리기로 하였다. 아직 경험은 짧지만,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바가 있어 청년변호사들께 소개해 드린다.

마을 변호사 일을 하며 얻을 수 있는 것. 그 첫째는 바로 생활의 활력이다. 일이 많은데 언제 거기까지 가느냐고 걱정할 수 있겠지만, 일이야 어차피 항상 많은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기 위한 원동력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다. 갑갑한 사무실을 떠나 하루 아니면 반나절이라도 시골의 공기를 맡고 오면 오히려 에너지를 얻고 돌아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둘째, 자부심을 얻을 수 있다. 조금 진지하게 말하자면, 처음 법 공부를 하며 생각했던 변호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새길 수 있다고 해야 할까. 도움을 드리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이다. 워낙에 법률과는 무관하게 살아오신 분들에게는 작은 조언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례를 들어보겠다. 농사를 짓는 부부가 왔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희 땅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나가시질 않고, 뭐 그렇다고 세를 주는 것도 아니예요. 이 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옆에서 남편이 다그쳤다. “이 사람아, 뭐 문제라고 왜 여기까지 오고 그래? 허~참!” 사실관계를 들어보니, 아이고, 점유자는 그 땅에 건물도 지어놨고, 안 나가고 버틴 지가 벌써 10년이란다. 워낙 성격이 느긋한 토지소유자(특히 남편)덕분에 그동안 별 항의도 안 받고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전 토지소유자 때부터 점유기간을 통산하여 20년이 넘었으면 취득시효가 완성되어 큰일이었다. 물론 부부는 취득시효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나는 놀라시지 않게끔 차근차근 설명드렸다. 당장 쓸 땅도 아닌데 좀 더 봐주자던 통 큰 남편분도, 토지소유권 자체를 잃을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 후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청하셨다. 십년간 점유자 스스로 나가기만을 기다린 부부내외께 도움 드리는 일, 새내기 변호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셋째, 개업변호사이신 분들은 상담과정에서 사건을 얻으실 수도 있을 것이다. 위 토지무단점유 사례를 이어가보면 상담을 받은 부부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해당소송을 덜컥 맡기려고 하셨다(나는 사건 수임을 할 수 없는 국선전담인지라 불가능하다). 물론 법률구조공단에 연계하여 도움을 주는 것이 좋겠지만, 상담자들은 이야기를 처음 들어준 변호사에게 의지하고 싶은 경향이 있는 것 같으니 가능성은 적지 않다.

넷째, 청년변호사에게 필요한 경험과 사건해결력을 기를 수 있다. 의외로 시골에는 복잡한 문제들이 많다. 상린관계, 수로이용문제, 하우스임대차문제, 외국인 배우자와의 문제, 영농회 정관 개정문제…. 사실 온통 케이스로 둘러싸인 시골인데 주민들이 법적으로 해결할 생각을 못했던 것뿐이다.

최근에 받은 상담내용을 보자. 오랫동안 마을의 농로로 이용되었던 사적 소유지를 군청에서 임의로 도로 포장해 주었는데 농로소유자가 군청에 포장을 벗겨내라는 원상복구요청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곧바로 주위토지통행권 대표판례가 떠오른다면 훌륭하시고, 안 떠오른다면 마을변호사 일의 장점을 느끼셨으니 더 좋다. 문제는 주위토지통행권 인정여부가 구체적 사건별로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상담자와 1995년 위성사진부터 뽑아보면서 농로로 언제부터 이용되었는지, 주변에 다른 길은 없는지, 비포장 도로를 포장된 도로로 바꾼 것이 소유자 사적 소유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는지 한참을 끙끙대며 상담을 해주었다. 중요한 것은 잘 모르겠다고 위축되거나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마무리 짓지 말고, 이것저것 찾아가며 상담자와 함께 해결방법을 알아보는 것이다. 실전적 지식과 사건해결력은 그 과정에서 쌓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나는 이 제도의 홍보대사도 아니고 아직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마음속에 작은 정원을 가꾸고 싶다면 한번 마을변호사로서 활동해보시기를 바란다. 내 일에 대한 자부심, 변호사로서의 삶의 의미를 여기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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