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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변호사에게 듣는 의료소송]준비된 변호사
신현호 변호사  |  shin@shinlaw.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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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승인 2015.05.01  17: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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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변호사들이 힘들다. 변호사시장이 황폐화를 넘어 사막으로 바뀌고 있다고 자조하는 이도 있다. 과거 10여년간 배출되었던 변호사 수가 로스쿨 도입 후 1년마다 늘어나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률이나 사회적 법률수요가 갑자기 늘어나지 않는 한 이런 법조시장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변호사가 너무 많아 줄이자고 하자, 어느 교수는 ‘변호사는 직업이 아니라 자격이다’라며 송무업무 이외의 다른 직업에 종사하라고 한다. 물론 직업으로든 자격으로든 사회가 존재하는 한 변호사는 존재할 것이고, 그 역할이 줄지는 않을 것이다. 변호사는 원시시대부터 존재한 인류최초의 직업이고,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분쟁이 다양하게 발생하게 되기 때문에 분쟁의 중간에 변호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변호사 일을 하려면 사건이 있어야 하는데, 상담객은 물론이고 전화 한통 없는 사무실에 종일 앉아 있으려면 직원보기 민망해지고 화장실도 눈치보고 가게 된다.

26년 전 변호사사무실을 처음 열었을 때가 그랬다. 군복무를 마치고 연수원 동기와 변호사사무실을 열었다. ‘일단 개업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얼마 후 불안으로 바뀌었다. 하루 종일 전화 한통 없어 절간처럼 조용한 사무실에서 판례공보와 신문을 읽다 퇴근하는 일상사가 반복되었지만 직원급여와 월세 내는 날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들리는 사람들은 상담을 마칠 때쯤이면 “판사하다 나오셨어요 검사하다 나오셨어요?” 묻고는 “연수원 출신인데요”라고 대답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에이…” 하고는 상담료를 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인테리어비용과 사무집기 구입비가 아까웠지만 더 이상 지탱하는 것이 무의미할 때였다.

동업변호사와 “좀 더 버텨보자, 아니다, 지금이 적기이다”라고 다툴 무렵 사무장이 들어와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의 오빠가 상담 왔다”고 전했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미루다가 내가 상담하게 되었다. 사법시험 공부할 때나 연수원시절 의료소송 자체를 상상해 본 적도 없었고, 의료판례는 연수원 다니면서 읽어본 기억도 없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던 차에 그냥 들어주려고 하였으나 이 역시 쉽지 않았다. 피해자의 오빠가 ‘본태성 고혈압, 심장판막치환술, 전맥락대동맥 폐색 등등’ 1시간을 넘게 설명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인내의 한계를 드러내고는 “연수원 출신이다. 이제 막 개업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솔직히 이야기하고 돌려보내려는데, 오빠가 “여동생에게 수술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은 채 오빠인 나한테만 서명하라고 하였으니 설명의무위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설명의무라는 용어는 오빠로부터 처음 듣는 낯선 단어였다. “의료과실을 입증할 자신이 없다”고 하고는 돌려보냈으나, 마음 한 켠에서 ‘설명의무’라는 말이 걸렸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설명의무 관련 논문을 검색해보고 많은 것을 확인한 후 받은 충격은 상당히 컸다. 이런 무지로 변호사를 하는 것은 사기행위에 가깝다고 자학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그 오빠가 다시 찾아와 “져도 좋으니 사건을 맡아 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하였다. 오빠는 “서초동 일대 법률사무실을 수십 군데 돌아다녀 봤는데 반은 의료사고라고 하니 상담조차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수임한 사건이 우리나라 최초로 ‘환자본인이 직접 자기결정을 하여야 한다’는 서울민사지법 90가합45545 판결이다.

지금은 환자본인에게 설명하고 동의받는 것이 당연시되었지만 당시에는 환자가 걱정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환자 모르게 수술동의를 받는 것이 의료관행이었을 때였으니 이 판결이 미친 영향은 상당하였다. 이 판결은 우리나라 의료관행에 큰 전환점이 되었고, 나한테는 의료소송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남아 돌 때에 의료판례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라도 더 읽어보게 되었고, 의학서적과 논문, 그림책을 보면서 조금씩 의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비록 우연히 시작된 의료소송이었지만 조금씩 늘려간 관심이 전문분야로 인정받게 된 것처럼 법률시장에는 무궁무진하게 펼쳐나갈 분야가 산재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의료판례 이외에 의료윤리, 건강보험정책, 민간보험, 보건의료노동관련 논문을 찾는다. 포화상태에 이른 손해배상(의)사건 이외에도 또 다른 시장을 개척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변호사의 첫 걸음은 특정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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