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의도 정가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성완종 로비 리스트가 이에 연루된 정치인 개인의 정치생명은 물론 향후 정국에 엄청난 여파를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민도 정치인들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많은 국민이 우리 정치가 언제까지 이런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가 하는 깊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정치제도나 정책변동을 설명하는 이론에 ‘흐름이론’이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킹던(J.S.Kingdon)이 제시한 것으로 개발도상국가의 주요제도와 정책의 변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킹던은 각종 변동을 이해하는데 우선 3가지 줄기의 커다란 흐름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문제의 흐름, 대안의 흐름, 정치의 흐름이 그것이다. 이들 흐름은 별도의 논리와 상황변화를 겪으며 흘러가다가 2개의 흐름 이상이 결합하게 되면 변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변동의 창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번 ‘성완종 리스트 사태’가 정치개혁을 이끌어내는 기회의 창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국회에서 평생을 일해 왔던 필자의 바람이다. 성완종 리스트로 야기된 현행 정치인과 정치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선진적인 정치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동력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야는 과거의 부정적 관행에서 벗어나 선진적인 정치개혁의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뼈아픈 자기 개혁을 통해 그 실행의지를 입증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정치개혁의 중심에 서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대통령의 주변 인사 등이 당사자로 거론되고 있어 곤혹스럽기는 하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방치하거나 계속 시간을 끌어보아야 더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정치개혁은 일차적으로는 여야를 포괄하는 정치권의 책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고, 대통령에게는 이를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이 있다. 대통령이 정치개혁의 선도에 나서야 한다.

정치개혁의 방향을 말하자면, 우선 정치자금과 관련하여 정치자금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풀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의 근원을 따지자면 정치인들이 필요한 정치자금은 제도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데 있다고도 볼 수 있다.

2004년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정치권은 정치자금의 측면에서 상전벽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되었지만 정치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한 측면이 있다. 현행 정치자금법을 재검토해서 기존 규제 중 비현실적인 것은 선진국 수준에 맞추어 풀되, 투명성을 높여 정치불신을 해소하여야 한다.

국회와 국회의원의 특권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최근 국회가 입법부로서의 제 위상을 찾아가면서 한편으로는 국회가 권위주의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국회와 정치권은 민감하게 선제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헌법상 부여된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등 국회의원의 특권에 대해서도 여야가 공동선언 등의 형식을 빌어서라도 자발적으로 내려놓아야 한다. 사실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은 권위주의 시절에 국회의 자율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특권이었으나 요즘에는 오히려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 문제에 있어서도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선거구획정안을 낼 수 있도록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한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인구의 등가성 문제에 관해 현재의 선거구간에 과도한 인구편차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선거구당 인구편차 2:1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정치개혁 특위가 가동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선거구와 관련된 부분은 한치의 양보가 없다. 그동안의 선거구 획정위원회의 활동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선거구는 적어도 총선 1년 전까지 확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예는 그렇지 못했다. 선거구문제가 여야의 흥정의 대상이 되어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하다 선거일에 임박해서야 인구의 등가성을 무시한 채 확정되곤 했다.

국회의 의사결정구조도 다수결 원칙에 맞게 재검토가 요구된다. 현행 국회법은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에서 따라 의석의 5분의 3을 점하지 않고는 과반의석을 차지한 다수당이라도 법안통과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런 가중다수결의 의사결정 구조 하에서는 다수당이 정강정책에 따라 입법을 하고 거기에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당정치와 책임정치의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 혼란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지금, 이 고통스런 소용돌이가 정치개혁의 창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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