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심사를 앞둔 성완종 회장이 유서를 남기고 사라지자 휴대전화 발신지를 추적해 1500명이 넘는 경찰병력이 투입됐다. 처음엔 그게 좀 이상했다. 한 개인의 자살을 막기 위해 경찰력이 대거 투입된 게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내 그는 수색견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됐다.

처음엔 명예자살 정도로 여겼다. 검찰 수사가 강압적이지 않았나 하는 시선도 많았다. 그렇게 끝날 사건이었다.

그런데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었던 메모지 한장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죽기 전 기자와 한 전화 내용이 그 메모지를 뒷받침했다.

초대형 스캔들이 시작됐다. 현직 국무총리,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들과 광역단체장 세명, 그리고 집권당의 전 사무총장이 연루됐다. 그들 중 일곱은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해 온, 이른바 친박계의 실세들이다보니 언론의 호들갑은 당연했다.

총리도 비서실장들도 도지사도 모두 돈 받은 사실을 부인했다. 처음엔 만난 사실조차 부인했다. 총리는 성완종 회장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하다가 이내 궁지에 내몰렸다.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했던 대통령도 재임 두달을 갓 넘긴 그를 버렸다. 그는 끝내 눈물을 보이며 사임했다.

사실 정치판에 얼어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였다. 성완종 회장이 워낙 인맥이 넓은데다 그가 전 정권과도 가까웠고 야당 의원과도 꽤나 많은 친분을 쌓았기 때문이다. 야당은 리스트에 오른 전직 비서실장에게 간 돈을 근거로 대선자금 수사를 언급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판이니 여당은 당연히 역공(逆攻)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진원지는 두 차례 ‘이상한’ 특별사면에 있다면서 전 정권을 문제 삼았다. 하긴 누가 보더라도 두 차례 사면이 괴이한 건 분명했다. 청와대는 한발 더 나가 차제에 전방위적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나섰다.

여야가 제대로 한판 붙은 것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런데 어차피 이 사건은 리스트 수사로 끝날 수도 없게 되었다. 원래 부패수사는 고구마 줄기 같은 것이어서 하나를 들추면 자연히 다른 줄기도 계속 뽑혀져 올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성완종 회장의 비자금 사용처를 적은 ‘치부책’이라도 나온다면 어찌될 것인가?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솔직히 말해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하다못해 향응과 거리가 먼 정치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국민 생각은 정치권은 언제나 가장 부패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후진형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예외 없이 부패정치가 횡행한다. 부패정치는 정치판이 공적 이익이 아니라 돈이나 이권 같은 사적 이익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정경유착이나 공천장사가 한 단면이다.

이런 부패는 복수정당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정당이 이념과 정책으로 뭉치지 않고 보스 중심으로 뭉쳤기 때문이다. 대중적 인기를 가진 보스 아래 개인의 영달을 위해 모여든 이들의 정당이 과연 정당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러니 흔히 여야를 두고 보수정당이니 진보정당이니 하는 것도 다 흰소리인 것이다.

이런 정당들의 뿌리는 YS와 DJ에게 있다. 두 사람은 경상도와 전라도에 기반을 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두 사람이 공천하면 빗자루도 국회의원이 된다는 판이었으니 두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한 충성경쟁은 극심했다. 자연히 공천헌금이 난무했고 언론도 국민도 그걸 당연히 여길 정도였다. 정치에 돈이 드니 눈 감아 줄 수밖에 없다는 관대한 시선은 정치권의 부패를 만들었다.

사실 YS와 DJ, 여기에 JP를 더한 이른바 ‘3김’이 뚝딱 뚝딱 만들었던 정당들은 이념과 정책으로 뭉친 집단이 아니라 오로지 정권 획득에만 목적을 둔 ‘패거리’에 불과했다. 보스였던 세 사람의 눈 밖에 나면 정치판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쉽게 말해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 외엔 마피아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구조를 가진 정당이었던 셈이다.

결국 ‘3김’은 한국 민주주의에 지대한 공을 남겼지만 한편으로 지역을 볼모로 후진적 민주주의 행태를 보였다는 역사적 비판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완종 사건도 한결 보기 쉬워진다. 그리고 이제 이런 후진적 민주주의를 청산할 때도 됐다. 그런 뜻에서 이 사건은 절호의 기회다. 리스트의 완결본을 찾아 정치권을 대숙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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