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에서 강의석 변호사님의 부고메일이 왔다. 1917년생. 사법요원양성소 9기. 1917년생이시면 2년만 더 사셨으면 100세를 사셨다. 그런데 사법요원양성소는 뭐지? 그것도 9기? 검색해 보았다.

사법요원양성소는 8·15광복 후 1945년 10월 25일 일본인 판·검사가 일시에 퇴진해 법원과 검찰에 사법요원이 부족해지자 당시 미군정청 사법부장을 중심으로 한 현직 법조인들이 이를 메우기 위한 긴급조치로 개설한 기관이다. 여기서 사법부장은 군정당시의 사법기관을 말하는데, 조선인 사법부장과 미군사법부장(우돌)이 있었는데 가인 김병로 선생이 첫 조선인 사법부장이었다.

1946년 첫 입소시험을 실시하고 61명의 합격자를 뽑았다. 그런데 이들 합격자를 입소시켜 필요과목에 대한 강의를 해오다가 예산부족과 미군정청이 양성소 유지를 거부해 개강한지 불과 4개월 만인 1946년 7월에 폐지되었으며, 입소시험 합격자 전원은 사법관시보(司法官試補)로 채용되어 판·검사로 임명되었다. 대법원의 한국법관사(1975년)에 나오는 내용이다.

강의석 변호사님은 1939년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의 전신) 법학과를 졸업한 후 바로 사법요원양성소에 입학하셨다. 그러나 위 설명대로 이 기관이 폐지되는 바람에 1947년 사법관시보실무시험을 치러 1948년 부산지방법원 심리원(미군정 당시의 부산지방법원의 옛 이름) 심판관을 하시다가 검사로 전직하여 1975년 대검찰청 송무부장(검사장)까지 하신 분이다.

그러니 사법요원양성소 9기라는 표현은 오기(誤記)로 보이고, 사법요원양성소 출신은 바로 사법관시보로 채용된 것이 아니라 다시 실무시험을 봐서 판·검사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강 변호사님이 61명의 사법요원양성소 출신 법조인 중 마지막 생존자라고 추정되는데 이곳 출신으로 유병진(고등법원 판사, 1966년 사망), 방례원(서울고법원장, 1992년 사망), 임항준(대법관, 2008년 사망)과 같은 분들이 검색된다. 마음같아서는 유족들을 방문하여 그분과 함께 사라질 본인과 법조의 기록을 찾아 보고 싶지만, 그런 마음만 이곳에 남기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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