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프로그램에 ‘리틀빅 히어로(Little Big Hero)’가 있다. 이상록 전 동아일보 법조기자가 책임프로듀서이다. 향신료를 잔뜩 뿌린 쇼 프로그램도, 성형미인으로 넘치는 드라마도 아니니 시청률은 바닥권이다. 제작진은 ‘Little Action Big Change(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꿉니다)’를 슬로건으로, 공익 프로그램을 표방하며 뚝심으로 밀고 나간다. 자문위원이랍시고 한달에 한번씩 제작팀과 모이지만 실제로 도움을 주기는커녕 부끄러움만 안고 돌아온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 헌신적인 분들이 많구나 싶어 숙연해지는 것이다.

자문단에 함께 참여하는 동화작가는 프로그램 보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도저히 자신은 저분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자괴감 때문이란다. 그래서 제작진에게는 ‘선행형’도 좋지만 ‘생존형’도 넣자고 주문한다.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여염집 처녀 총각도 출연시키자는 뜻이다. 거룩한 선행을 하지 않더라도, 각각 제 몫의 책임을 다하는 건강한 시민이 모여서 건강한 사회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취재의 뒷얘기도 전한다. 선행의 주인공 뒤에는 의외로 상처 입은 가족이 많더라고 하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주변에서 잡음이 나올 만한 분들은 취재 과정에서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제작진의 방침이다.

방송 1주년을 맞아 지난 한해 방송을 정리하는 시상식을 가졌다. 선행에 금메달 은메달이 있을 수 없으니 어찌 순위를 매길까 싶어 제작진은 고심하였고, 결국 동료들의 평가에 의존하였다. 시청자의 의견도 받고 자문위원의 의견도 보탰지만 출연자 서로의 평가에 훨씬 무게를 두었다.

화장실 청소를 하여 모은 1029만원을 진도군 장학회에 기부한 노부부, 장애아동 7명을 입양하여 키우는 특별한 엄마,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호스피스 봉사를 하는 애매한 관계의 초등학교 소꿉친구, 무료 공부방을 운영하는 시골 약사, 뉴질랜드 노숙자들에게 공짜 샌드위치를 나누어 주는 이민 간 택시기사, 15년간 어려운 이웃에게 먹거리를 배달하는 족발집 사장님, 낙도 의료 봉사를 위해 선장이 된 치과의사, 20년간 매년 2000만원씩 내 놓는 천호동 모텔 사장님, 헌 구두를 수선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구두닦이 아저씨 등 출연자의 사연은 각양각색이었다.

제작진은 프로그램 제목 ‘HEROS’의 첫글자를 따서 수상 부문을 ‘Heart’, ‘Effect’, ‘Revolution’, ‘Overcome’, ‘Special’로 나누어 출연자 모두를 시상식장에 초대하였다. 대상에 해당하는 ‘Special’ 상은 장애인 7남매의 엄마가, ‘Effect’ 부문은 뉴질랜드 택시기사가, ‘Heart’ 부문은 화장실 청소의 주인공 부부, ‘Overcome’ 부문은 구두닦이 아저씨가 받았다. 뉴질랜드 운전기사님은 배식봉사를 쉬게 될까봐 고심하다가 가족에게 대신 봉사를 맡기고 제작진이 보내 준 항공권으로 날아왔다. 이민 후 처음으로 서울에 와서 노모를 뵈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구두닦이 아저씨는 시종 유머를 잃지 않고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을 씩씩하게 키우고 있어 가슴을 묵직하게 하였다.

굳이 케이블 방송의 특정 프로그램을 주절주절 설명하는 이유는 영웅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좀처럼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다. 애써 성과를 깎아내리고 흠집을 잡는 데 맹렬하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러하지만 지도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모택동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은 10년간 교육기관을 마비시키고 당정 간부 200만명을 숙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인민의 영웅이다. 공(功)이 과(過)를 덮었다는 평가 때문이다. 건국 직후 한국전쟁을 겪고서도 급속도로 성장을 이룬 데는 분명 지도력이 바탕이 되었다. 국가 건설 과정에서 그 사회의 잠재력을 총동원할 수 있는 정치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엉뚱하게 신조 아베는 자학사관(自虐史觀)을 극복하자며 동아시아 이웃국가를 상대로 각을 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자학사관’은 대한민국 지식분자들에게 전가의 보도이다.

‘리틀 빅 히어로’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소박한 영웅을 찾아내듯, 우리가 이룬 현실을 긍정하면서 자유와 민주, 복지를 가능하게 한 대한민국의 실존 영웅들을 기릴 수 있다면 정말 흐뭇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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