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기고문에서 용서의 경제학을 언급하였다. 용서를 하면, 용서하는 사람이 감수해야 할 비용은 용서받는 사람이 받는 혜택의 대략 1/6 정도에 불과하며, 사회 전체에게 돌아가는 순혜택(net benefit)도 아주 크다는 점을 텍사코 대 펜조일 사례를 통해 확인하였다(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현 파산법제도도 구약시대부터 존재했던 희년제도 용서의 경제학을 현재의 경제·사회·법제도에 맞게 업데이트시킨 제도임을 언급하였다).

그러면 우리 삶속에서 어떻게 하면 용서를 일상화시킬 수 있을까? 그리하여 우리 사회 전체의 질적 양적 가치창출을 극대화시켜 구성원 모두가 궁극적으로 승자가 되게 할 수 있을까? 선진 미국사회에서 그 모델을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로 깊은 인상을 남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은 유치원에서 배웠다(We have learned at kindergarden what we have to know in our life)’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의 핵심은 유치원에서 배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선진 사회·삶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1.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벌떼처럼 덤비지 말고 다른 사람의 권리도 배려하여 줄을 서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쉽게 관측되는 줄서서 기다리는 현상은 바로 유치원 교육에서 철저히 확립된 것이다.

2. 사람을 만나면 꼭 인사를 하라고 가르친다. “안녕 Hi!” “좋은 아침 Good Morning” “좋은 오후 Good afternoon” “좋은 저녁 Good Evening” 등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꼭 하라고 교육한다. 이로써 서로는 상대방에게 의식적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 혹시 갈등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가능한 한 우호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3.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언행을 할 때는 “실례합니다(“Excuse me”)”를 꼭 하라는 것이다. 비록 남에게 직접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정신적으로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상황이면 미국사람 입에서는 자동으로 나오는 표현이다. 이로서 상대방은, 감정이 우호적으로 유지되어, 나중에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해도 쉽게 용서할 수 있는 인지적(perceptional)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것이다.

4. 남에게 피해를 아주 미미하다 할지라도 실제로 끼치면, 즉시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I am sorry. Forgive me.”)”를 말하라 한다. 형식적이 아니라 진심어린 표현을 하라는 것이다. 이로써 상대방의 감정이 나빠지는 정도가 현격히 감소한다.

대개의 경우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감정 더하기 이성의 동물인지라 불같이 화낼 수 있는 상황만 피해도 평화적 문제 해결의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5. 무슨 선택을 하든지 신중히 하고 쉽게 내던지지 말라는 것이다.

위 다섯 가지 배움 중 4번은 특히 갈등상황 해소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미국이 다양한 배경 문화들을 가진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사회임에도 성공적 멜팅팟(요소들이 녹아져 하나되는 냄비)을 형성하는 비결은 위 다섯 가지 배움들이 주요 기능을 하고 있는바, 특히 4번 “Saying I am sorry(남에게 피해를 줬을때 “미안하다” 하는 것)”은 결정적 분위기 조성을 한다. 이 말을 들은 피해자는 감정이 우선 누그러지고 웬만하면 용서할 마음을 갖게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미국적 현상이 주목을 끈다. 바로 “미안합니다”란 말을 한 사람은 법적으로 아주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증거법(Evidence Law)에서 사고가 난 직후 피해자에게 “미안합니다”라고 한 사람은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admission of wrong doing)으로 간주돼, 피해자로부터 소송을 당했을 때 꼼짝없이 지게되고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한다. 평소 땐 “실례합니다”가 입에 붙어사는 미국인들이 막상 자동차 접촉사고 등 법적 책임이 따르는 사고가 났을 땐 절대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안 한다는 것이다. 쌍방은 무조건 법적인 모드에 들어간다. 처음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인사하고 서로 친절한 미국인들이 막상 법적 분규 개연성이 있는 사고가 났을 때는 자세가 적대적으로 바뀌는 것인데, 이 현상을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아쉽게 생각해 해당 증거법 조항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 아쉽게도 미국 50개주 가운데 이러한 법개정을 확정한 주는 매사추세츠주 밖엔 아직 없다. 많은 주들이 이를 입법화하려 했지만 아직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바탕이 따뜻한 사회라 할지라도 법치주의가 확고히 자리잡은 사회의 아쉬운 한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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