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필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국제건축문화교류 사업의 진행을 담당하게 되었다. 45세 이하의 젊은 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이 사업에서 두 차례의 심사과정을 거쳐 최종 아홉팀이 선정되었다. 각 팀은 자신들이 정한 주제에 따라 국외 몇몇 지역을 탐방하고 결과물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국가 중의 하나가 영국이었고, 이 일을 핑계 삼아 필자도 모처럼 런던에 방문할 계획을 잡았다.

하이드 파크 근처에 있는 아담한 호텔에 일주일간 머무르며 영국의 수도 런던을 탐색했다. 이미 잘 알려진 곳이지만 대영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같은 대형박물관을 꼼꼼히 둘러보았고, 상하이엑스포 영국관 설계로 유명세를 탄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디자인 한 빨간 이층 시내버스를 타고 도시 곳곳을 관찰했다. 런던은 오랜 기간 템스강 북쪽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오히려 강의 남쪽 지역이었다.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밀레니엄브리지를 따라 템스강을 건너면 붉은 벽돌건물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 건물이 바로 테이트모던 갤러리다. 보행자 전용으로 놓인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가는 것도 그렇거니와 세인트폴 대성당과 테이트모던이라는 런던의 두 명물을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도 그야말로 이국적이다. 한국, 특히 강폭이 최소 700미터에서 1.5킬로미터에 이르는 한강이 도심 한가운데에서 동서를 가로지르는 서울에서는 실현하기 버거운 일이다. 거리도 거리이지만 떠밀려갈 듯 세찬 바람이 부는 다리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에서 흐르는 엄청난 양의 시퍼런 강물을 바라보며 걷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체험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런던의 강북과 강남이 처음부터 가까웠던 것은 아니다. 폭이 400미터도 되지 않는 강으로 분리되었기에 한강에 비하면 훨씬 가깝지만, 강을 경계로 한 남과 북의 격차는 이러한 물리적 거리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정치, 경제, 금융은 물론 관광산업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작동시키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거의 모든 요소가 강의 북쪽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이 급속히 진행되었고 그 결과로 지역 간 불균형이 심각해졌는데, 특히 런던은 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불균형의 정도가 더욱 심했다. 강북에는 역사와 행정 중심지인 웨스트민스터 지역과 국제적인 금융 및 업무시설이 밀집된 세계경제 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 지역이 있었지만, 이 두 지역과 강 건너 마주한 서더크와 램버스 지역은 런던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동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방치된 산업지역이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영국 정부 주도로 진행된 ‘밀레니엄 프로젝트’로 인해 런던은 새롭게 재탄생하게 된다. 핵심적인 사업은 밀레니엄 브리지, 런던아이, 밀레니엄 돔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물론 쓸모없던 화력발전소를 테이트모던 갤러리로 탈바꿈 시킨 것도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런던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던 런던아이는 지역을 부흥시키는 출발점이 되었고, 리모델링에 성공적 사례로 손꼽히는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낙후되었던 강 남쪽 지역을 문화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격상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더해 빅토리아 시대에 틀을 잡은 도시구조가 그대로 보존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오래된 건축물들이 템스 강을 두고 서로 마주보며 런던이 가진 도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진 도시의 틀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런던의 모습에서 필자는 답답함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영국에서 만난 한 건축가는 과거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건축물을 계속 지어댈 수 있는 아시아의 건축시장을 부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라는 속도의 장벽, 그리고 틈새하나 없이 늘어선 높은 아파트 장벽에 가로막힌 한강을 가진 서울의 환경도 그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넓디넓은 아파트 단지를 지나, 도로 밑 어두운 토끼굴을 통과해야만 겨우 다다를 수 있는 곳이 한강변이다. 문명의 발상지이자 정착의 중심이 된 강이 서울에서만은 ‘섬’이 된다. 한강 르네상스니 하는, 수없이 많았던 한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강을 대하는 서울시민의 가장 적극적인 태도는 강변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강이 도시 속에 있는 강으로 역할하지 못하는 이유로 너무 큰 폭 탓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한강의 고립 역시 ‘속도’를 중시하던 개발시대의 관습을 떨쳐버리지 못한 결과는 아닐까? 그 후로도 우리는 한강을 이유로 불균형과 격차를 자꾸만 키워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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