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탱고를 소개함과 동시에 시공사에서 출판한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박종호 저, 2012)’에 대한 서평 형식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좋은 공기’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난 이 도시를 만화 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9살 소년 마르코는 바다 건너 돈 벌러 떠난 엄마를 생각하며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린다. 시인 기형도가 유년의 윗목에 쓴 ‘엄마 생각’과 오버랩된다.

열무 삼십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 엄마 안 오시네

시장에 간 엄마는 타박타박 배추잎 같은 발소리를 내며 돌아와 혼자 엎드려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간 엄마는 아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던 눈물이 마를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마르코는 엄마를 찾아 이탈리아 제노바를 떠난다. 마르코의 어깨에 올라앉아 여행을 함께 떠나는 친구는 희고 작은 원숭이 한 마리. 마르코는 힘들고 외로운 여행길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나도 함께 유년을 추억하며 이 노래를 불러본다.

아득한 바다 저 멀리 / 산 설고 물길 설어도 / 나는 찾아가리 / 외로운 길 삼만리 / (이하 중략) /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삼만리

엄마가 계신 그 곳, 부에노스 아이레스.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부유했던 나라였다. 풍부한 농수산물을 유럽으로 수출했다. 부두의 물동량이 늘어갔다. 이에 따라 많은 선원이나 부두 노동자가 필요했다. 반면에 이탈리아 등 유럽 하층민들의 삶은 고달프고 힘들었다. 돈을 벌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야 했다. 아르헨틴 드림을 꿈꾸며 유럽을 떠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동남쪽의 지저분한 항구인 라 보카(La Boca). 그곳으로 수백만의 이민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이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엔 흑인이 아주 적다. 이민자들 대부분은 비린내 가득한 통조림 공장에서 정어리의 머리와 꼬리를 떼어내는 일을 했다. 하루하루 힘들게 노동을 했다. 고향에 돈을 보내며 한푼이라도 아끼며 살았다. 그래도 최소한 고향인 유럽의 삶보다는 풍요로웠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의 삶이 겹쳐진다. 덕수는 베트남의 전쟁터로, 독일의 탄광으로 돈을 벌기 위하여 떠나야 했다. 가난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너무 힘들다. 슬픈 눈물이 끝없이 흐른다. 그래도 베트남엔 둘도 없는 친구가 있었고, 독일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슬픔 속에 날 보듬어 준 작은 행복이 있었다.

이역만리. 이곳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이역이었다. 가족이 보고 싶다. 외롭고 힘들다. 눈물이 흐르다 조금씩 말라간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고향인 유럽까지 삼만리.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생이별이 따로 없다. 이별은 아프고 슬프다. 슬픔과 아픔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고 노래했다. 그리고 함께 탱고를 추었다.
그러나 탱고는 이별을 전제로 한 춤이다. 3분 후면 남녀는 서로 잡았던 손을 놓는다. 곡이 바뀌면 상대도 바뀐다. 단 3분에 자신의 소망과 열정을 상대방에게 다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정열적이고 원초적이다. 끝없는 영원한 사랑이 아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끝을 알고 시작하는 안타까운 사랑이다. 그래서 탱고는 애달프고 슬프다.

탱고는 2/4박자 리듬으로 만든 춤이다. 탱고가 연주되기 시작한다. 그 리듬에 맞추어 탱고를 춘다. 남녀가 서로의 오른쪽 가슴을 밀착한다. 서로의 체취와 땀, 심장 박동을 느낀다. 상체를 꼿꼿이 세운다. 명확하고 역동적인 리듬에 맞춰 남녀의 다리가 화려하게 움직인다. 어느 순간 남자는 여자의 상체를 밀어 떨어지게 한다. 그리고 턴(turn)을 한 여자를 다시 끌어당겨 가볍게 안는다. 갑자기 순간적으로 멈춘다. 또 다시 움직인다. 탱고는 멈춤과 움직임의 반복이다. 여자는 탱고를 춘 적이 없어도 좋다. 탱고 춤의 진행과 순서는 남자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났다. 남녀는 서로 떨어진다. 서로 헤어진다. 다시 그리움과 외로움이 밀려온다.

그리움과 외로움. 탱고의 선율은 그런 마음을 잘 표현한다. 처음에는 바이올린, 플룻, 기타로 탱고를 연주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도네온이 탱고 연주의 대명사가 되었다. 반도네온은 독일 하층민들이 가져온 악기였다. 아코디언과 비슷한 소리를 내지만, 건반이 없다. 대신 단추처럼 생긴 키를 양손으로 눌러 소리를 낸다. 이동과 휴대가 간편했다. 반도네온의 음색은 구슬프고 암울하다. 그래서 탱고의 선율이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졌다. 독일 하층민들은 고달픈 일상을 반도네온 연주와 함께 했다. 반도네온 음색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것이 탱고의 음색이 되었다. 그리고 반도네온 연주가 탱고의 정신이 되었다. 탱고는 밑바닥 인생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나 그 당시 탱고는 부둣가 하층민들이나 추는 더럽고 음탕한 춤에 불과했다. 아르헨티나 상류사회는 탱고를 멸시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탱고는 그저 하류 문화에 불과했다. 다만 부유층의 ‘버릇없는 아이들’ 몇몇이 주점에 드나들며 탱고를 배웠다. 그리고 해외를 왕래하며 유럽에 탱고를 전파했다.

그런데 1912년부터 파리에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탱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어떤 춤보다 몸을 밀착하여 추는 탱고에 매료되었다. 함께 춤추는 여인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학시절 나이트클럽에서 젊은이들이 함께 춤을 추던 그 때를 떠올려본다. 신나는 댄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조용한 발라드 음악에 맞춰 한손으로 상대방의 손을 마주잡고 한손을 상대방의 허리에 감싸며 추던 블루스를 더 갈망했다. 탱고라는 말의 어원은 ‘가까이 다가서서 만지고, 마음을 움직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탱고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상징한다.

그 당시 파리는 아르 누보(Art Nouveau)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파리지엥은 탱고를 새로운 예술(New Art)로 받아들였다. 탱고 잡지와 탱고 향수, 탱고 음료수, 심지어 탱고 란제리까지 등장했다. 파리엔 매일 크고 작은 탱고 파티가 열렸다. 런던엔 탱고 차(tea)도 팔렸다. 교황은 남녀가 밀착하여 추는 탱고를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음란하고 야만적인 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탱고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고 유쾌한 리듬을 유행시키며 전 유럽을 열광시켰다.

파리는 세계의 수도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상류층은 파리의 문화를 동경했다. 1910년부터 1920년 사이 파리의 건축물을 그대로 모방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남미의 파리’로 만들었다. 세련된 파리지엥들이 탱고에 열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파리의 탱고를 역수입하여 너도나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아르헨티나에선 이제 더 이상 탱고를‘더럽고 음탕한 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탱고를 잘 추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성공의 척도로 여겨진다. 탱고는 이제 아르헨티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탱고가 시작된 곳, 라 보카. 그 곳에 서민들의 영원한 희망이자 신으로 남아있는 3명이 있다. 그 3명은 에비타, 마라도나, 그리고 탱고 가수인 카를로스 가르델이다. 세 사람은 모두 빈민가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소망하는 꿈을 이루었다.

탱고는 춤이지만 또한 노래이기도 하다. 탱고의 최대 히트곡은 가르델이 만들고 부른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이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탱고곡이다. 주인공 알 파치노는 시력을 잃은 퇴역 장교다. 앞을 볼 수 없는 자신의 운명에 좌절한다. 목숨을 끊기 전에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어느 식당에서 여종업원과 탱고를 춘다. 눈을 뜨고 있지만 그녀를 볼 순 없다. 하지만 여인의 향기만으로 그녀를 느낄 수 있다. 탱고를 출 때마다 그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아! 바람이 불고 있구나. 살아야겠다. 또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젠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난 살아야겠다. 알 파치노는 시인 남진우가 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는 직역하면 ‘말 대가리 하나 차이로’라는 말이다. 경마에서 2등을 한 말이 우승마보다 말 대가리 하나 차이로 우승을 아쉽게 놓쳤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이 곡의 제목은 ‘간발의 차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인생에서 ‘간발의 차이’로 모든 것을 잃는 경우도 있다. 재산도 잃고 지위도 잃고 사랑도 잃는다.

시골의사 박경철이 쓴 책을 읽었다. 그는 그리스 여행에서 만난 그리스인들을 통해 행복해지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은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절대로 불행할 수 없는 것이다. 가끔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불운’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다”라고. 인생에서 ‘간발의 차이’로 모든 것을 잃더라도, 그것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불운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난 가르델이 부른 탱고 ‘포르 우나 카베사’를 깊고 심심한 마음에 올려놓고 다시 듣고 있는 중이다.

1951년 에비타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겨우 33세였다. 57세였던 남편 페론이 대통령 재선에 성공한 그 해였다. 빈자와 약자 그리고 부녀자가 울고 또 울었다. 에비타는 말한다.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 에비타가 죽자, 페론은 독재와 부정의 길로 빠졌다. 민심을 잃어간다. 탱고도 쇠락한다. 탱고를 추지 않기 시작했다. 탱고를 노래하지 않기 시작했다. 탱고는 종말을 고하는 듯 했다.

그런데 꺼져가던 탱고의 불씨가 1980년대에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정점에 피아졸라가 있었다. 그는 ‘누에보 탱고’를 만들었다. 그것은 춤을 추기 위한, 노래를 부르기 위한 탱고 음악이 아니었다. 탱고에 클래식을 결합했다. 그리고 연주를 위한, 감상을 위한 탱고 음악을 탄생시켰다. 누에보 탱고의 대명사는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Libertango)’다. 요요마의 첼로 연주로 들어보자. 갈구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난 자유롭고 싶어요(to be free). 그대 곁으로 돌아가 함께 있고 싶어요(to be with you)” 가수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가 ‘세일링(Sailing)’에서 목말라 했던 것도 바로 자유(Libertad)였다.

탱고는 다시 춤으로 돌아온다. 탱고는 두 사람의 끊임없는 소통 속에서 완성되는 춤이다. 혼자 추는 탱고는 없다. 그러나 탱고는 3분의 사랑이다. 탱고가 끝나면 이제 서로 헤어져야 한다. 홀로 바람 부는 거리로 나선다. 외롭다. 그러나 자유롭다. 후지와라 신야는 말했다. 고독은 자유와 한몸이라고. 그래서 탱고는 늘 외로움과 자유의 선율을 타고 흐른다. 거리엔 피아졸라의 탱고 ‘망각(Oblivion)’이 모래알처럼 흐른다. 그래, 이젠 서로 잊어야 해. 하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그곳에 있기를 원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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