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보다가 기가 막혀서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4층짜리 연립빌라에서 오늘도 현재 진행중인 사건이다. 새벽 두, 세시경 빌라 전체 벽이 흔들릴 정도로 쾅, 쾅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놀라서 깬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갔다. 소리가 나는 이유는 2층에 사는 주인공이 그 시간쯤에 매일 자기 현관 옆 벽을 큰 망치로 계속해서 두드려대기 때문이었다. 그 주인공은 그런 짓만 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소음을 만들어 낸다. 대낮에는 쉭, 쉭 하는 소리를 계속 낸다. 옆집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불안하다. 또 중간 중간에 쿵쿵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방송사에서 그 주인공을 만나 소리가 나는 이유를 알아냈다. 목검을 만든다면서 계속 대패질을 하는 소리, 집 안에서 역기를 들었다가 바닥에 쿵하고 내려 놓는 소리였다. 벌써 1년째 이런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연립주택의 입주자들은 대부분 노이로제 상태다. 집에만 들어오면 아예 이어폰을 끼고 듣기 좋든, 싫든 크게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있다. 그 소음을 조금이라도 피해보고자 하는 비참한 바람 때문이다.

이 살벌한 주인공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있다.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이냐는 것이다. 망치를 들고 다니는 사람인 만큼 다른 입주자들은 제대로 항의도 못한다. 이런 사람을 교도소에 보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법률가들은 그 이유를 안다. 그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형사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때 이런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법률적 조치라고는 소음을 내는 위반행위를 할 때마다 100만원씩 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민사 판결을 받는 수밖에 없는데 이 주인공이 그 연립에 보증금이 거의 없이 월세로 살고 있는 등 아무런 재산이 없다면 그런 판결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주인공은 오늘도 이웃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같은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률에는 지나치게 형사처벌 규정이 많다고 하는 지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국회가 아니라 사실상 행정부의 소관부처에서 법을 만들다보니까 자기 편의를 위해서 형사처벌 규정을 쉽게 넣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새로 생겨나고 있는 신종 범죄에 대해서 우리 법률체계가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14 안내원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서 욕설을 해댄다면 그런 사람을 과연 형사처벌할 수 있을까. ‘공연성’이 없어서 모욕죄로도 처벌이 힘들고, 이른바 ‘유형력’의 행사로 간주될 만큼 큰소리로 욕설을 해대지 않는 한 폭행죄로도 처벌하기 힘들다.

1년 중 절반을 집 앞까지 따라 오고 끊임없이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는 스토커들은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경범죄처벌법의 적용대상이 될 뿐이다.

층간소음이 원인이 되어 상해 사건이나 살인 사건으로까지 발전되는 경우는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게 큰 사건으로까지 번지는 이유는, 윗집에 사는 사람이 나중에는 일부러 소음을 더 크게, 지속적으로 내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을 일부러 유발하는 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면 그런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형사처벌 규정이 이미 존재해 왔어도 좀 더 엄한 양형이 되어야 할 범죄도 많다. 명예훼손죄가 대표적인 경우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SNS를 통하여 순식간에 퍼지는 요즘 세상에 허위사실 유포로 피해자가 입는 상처는 종전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몇년 전 유명 가수가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는데도 졸업했다고 거짓말했다면서 진실을 밝히라고 인터넷 카페를 만든 일당이 있었다. 당사자는 어이가 없어서 처음에는 대꾸도 안했을 것이다. 내가 알고 가족이 알고 학교 동창이 아는데 무슨 입증이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몇 년을 시달리면서 그 가수는 피폐해졌다. 가해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피해자 가수는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 덕분에 그 가해자들은 일부 선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 가수는 정말 가해자들을 용서했을까? 나는 그가 너무 지치고 힘들고 무서워서, 그리고 그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추측한다. 사기죄가 절도죄보다 엄벌되어야 하는 이유는 피해를 입은 재산상 이익도 문제지만 사기꾼에게 농락당한 영혼이 더 큰 피해가 되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것, 전화를 받을 때마다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재물 이상으로 보호되어야 할 법익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왜 아직도 고조선 시대처럼 재물죄만이 강력한 처벌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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