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예컨대 음악에 대하여 아는 만큼 잘 들리고, 미술에 대하여 아는 만큼 그림을 잘 알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 경제, 과학, 문학, 예술, 체육 등등에서 끝없이 분석, 연구가 진행되고 소위 발전한다. 분석·연구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종교, 관습, 미신도 그러하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 대세이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이 모든 대세는 별 다른 영향력이 없다. 발전하는 것도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변천하고 있을 뿐이다.

별것 아닌 음식을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떨며 점심으로 먹는 후진국 젊은 아낙네가 친구들이 없어 묵묵히 훌륭한 음식을 혼자서 먹는 스웨덴의 부자아저씨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써있는 글을 보았다. 맞는 말이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조금씩 늘어나다가 최근 백여년 사이에는 2~3배씩 늘어나고 말았다. 내가 어릴 때는 사람이 60세가 되면 생업에 관한 일은 대부분 그만두고 70세가 넘으면 곧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라 하고 80세가 넘으면 쓸데없이 더 살고 있는 듯하였다. 늙은 강태공이나 괴테, 베르디가 있는 것은 사람들이 알았지만 그러했다. 이제는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2~3일 앓다가 死한다)가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정말 그렇게 원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좋은가. 참으로 알 수 없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만 99세는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예술은 길고 인생도 길다가 된다. 그러나, 99세까지 팔팔하게 살 수만 있다면… 하고 헛된 욕심이 들기도 한다.

변호사를 한 지 12년이 되었다. 검사(檢事)로 있다가 퇴직하여 전관예우를 받아서 그런지 2~3년간은 사건수임도 제법 있었고 돈을 별로 모으지는 못해도 지갑이 두둑할 때가 꽤 있었다. 주위 친구들에게 그동안 얻어먹은 술빚을 갚는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인간은 결핍이 있을 때는 결핍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가 결핍이 해결되면 권태가 찾아오므로 결국 행복할 수가 없다는 비관적인생론이 맞는지? 나는 중간에 변호 일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다가 능력과 운이 따르지 않으니 계속 변호사다.

이제 갓 변호사를 시작한 젊은이들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 등을 떠밀어 주고 치켜세워 주고 다 아는 잔소리를 하고 싶어진다. 부지런히 일하고 변호사로서의 자존심을 잃지 말며 출세의 길을 찾으라고,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도 의뢰인들은 생활의 토대가 걸려있고 자존심, 분노, 희망 같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걸려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젊은 변호사들이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어려운 길을 돌아 변호사가 되었는데 보수는 적고 힘은 무지하게 들어서 괴롭다고. 돈 되는 사건은 대형로펌, 전관변호사들이 다 가져가 버렸다고. 지네들끼리 무엇인가 근사한 옷을 입고 맛있는 것을 몰래 먹고 있다고.

인간세상에 그런 부분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변호사로서의 일이나 자존심, 행복과는 다르다. 변호사가 꼭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우리나라는 변호사자격자 수가 약 3만명인데, 미국은 현재 변호사 수가 약 130만명 되어도 미국부모는 자기자식을 어떻게든 변호사로 만들고 싶어 한다.

변호사로서의 길은 길다. 성공하는 사건 패배하는 사건이 수없이 반복될 것이다. 사건이 없어 컴퓨터를 뒤적거리다 공원벤치에 쭈그리고 있을 때도 있고, 신나는 사건에 바빠 옷 바람을 휘날릴 때도 있을 것이다.

변호사는 정년이 없다. 공증인변호사가 80세가 넘으면 공증을 그만하도록 되어 있는 정도이다. 내 나이 지금 만 63세이다. 법조 경력은 35년이다.

‘삼국지’ 소설에서 많이 나오는 표현인데, ‘노둔(老鈍)한 말(馬)이 먹다 남은 콩을 따라 다니는’ 꼴을 보이는 지, 당장 돈이 많이 필요하고 발전하여야 하는 젊고 패기 있는 젊은 변호사들에게 누를 끼치는지, 할 일 없어 법원, 검찰 주위를 맴도는 사람으로 보일지 걱정된다. 나의 젊은 시절, 법정에서 ‘기록’을 ‘기로꾸’라고 일본식 발음하시던 나이 많이 든 변호사님들을 회상한다.

사람의 행복과 지식, 건강, 연륜, 출세의 길이 함수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함수적관계는 있지 싶다. 그러므로 또 그렇기 때문에라도, 젊은 변호사들! 행복을 위하여 힘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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