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초가 되면 법조계에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지만, 올해는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선거에 의해 새로 선출되었고, 검찰의 대규모 인사와 법원의 대규모 인사로 법조계 전체에 큰 변화가 생겨났다. 평생법관제의 정착으로 법원장직을 마친 고위법관이 일선 재판부로 복귀하는 법원에 비하여 후배의 승진에 따른 선배들의 용퇴를 아직도 전통으로 삼는 검찰의 연소화와 변호사회의 변화는 예전 같지 않은 법조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어떤 경우든 원하는 공직이나 선출직에 새로 취임한 분들에게는 축하를 드리고,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거나 그 과정에서 새 길을 찾는 분들에게는 행운이 있기를 기원한다.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일정한 공적 직무를 담당하는 일은 보람된 일이고 더 많은 이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길이므로 늘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런 이유로 공적 지위를 나타내는 고위직에 선출되거나 임명되기 위한 노력들이 때로는 남들의 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의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기꺼이 그 길에 도전하는 것은 고위직에 오르거나 선출직으로 공적 직무를 담당하는 것이 개인의 능력을 인정받고, 자아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며, 삶의 성공이라는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적직무를 담당하는 개인에게는 그가 담당하는 지위가 높고 그 직책이 무거울수록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부담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임명장을 받는 날과 퇴임식 당일에만 기쁘다는 대법관의 직이나, 취임한 후 퇴임할 때까지 맘 편히 잘 수 있는 밤이 없었다고 그 직무의 무거움을 토로하는 검찰총수직은 무겁고 또 무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의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대한변호사협회의 협회장이나, 훌쩍 1만명을 넘긴 서울지역의 변호사를 대표하는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직도 다른 공직에 못지 않게 무거우리라 짐작한다.
 
이런 이유로 모든 공직에는 임기가 정해져 있어 임기를 마치면 물러나는 것이고,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본인이 공적 직무를 감당하기에 어려울 정도의 육체적, 정신적 상황이면 마땅히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공직은 그 공직을 담당하는 개인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그 공직을 위탁한 국민과 국가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위한 자리이기 때문에 임기를 두고, 능력이 부족하면 스스로 물러남을 허용하는 일일 것이다.
 
공직의 어려움과 그 본질을 이렇게 살펴보면, 공직에 취임하는 분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은 자신이 그 직위에 어울리는 경험과 능력, 가치관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을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법조계에 한정하여 생각해 보면, 검찰이나 사법부에서 오래 몸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현실적인 갈등을 조정하고, 국가 공동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 각 분야의 일을 관장하고 조정하는 행정부의 고위 책임자로 임명되는 일은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행정부의 직무에 비추어 보면, 적절하고도 필요한 인사인지 의문이 든다. 사법부나 검찰은 본질적으로 사후적인 평가를 본업으로 하는 직무이지,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집행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법원이나 검찰의 고위직 출신 법률전문가를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부부처의 책임자로 곧바로 임명하는 것은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능력에 맞는 인사라고 보기 어렵다. 그분들 개개인의 인격이나 성실성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법조 외의 사회 각 분야에서 수십년간 경험과 능력을 쌓은 분들에게 그 분야의 공직에의 기회를 주는 것이 국가의 발전을 위해 더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그 용모가 자연스럽듯이, 오랫동안 법조인으로 쌓은 경험과 경륜은 그에 맞는 직위에나 어울리는 것이지, 아무 자리에나 다 맞는 옷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제안에도 불구하고 행정부의 고위직을 고사하셨다고 보도된 전직 헌법재판관님이나 어떤 대법관님의 태도는 공적인 입장에서 보면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전례로 보인다. 최근 지나치다고까지 평가되는 법조인들의 행정부에의 진출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축하할 일이지만 국가적으로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것은 정의로운 일일 뿐 아니라, 공공복리에도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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