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승록(1905~1985)
역사는 승자의 역사란 말도 있지만, 바른 역사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사실을 망각하기도 하고 왜곡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는 늘 반성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의식이다. 나는 ‘한국법학사(1990)’를 쓸 때 진승록(陳承錄)이란 이름을 수차례 접했으나 별로 주목하지 못했다. 서울대 법대 학장과 고시위원장을 지냈다는 경력을 알고는 있었지만 법학자로서 조명할 겨를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최근 그의 딸 진미경 박사(아주대 정치학 교수)를 만나 선친의 학문과 명예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보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되었다.

진승록은 강릉 출생으로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동경상업고등학교(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귀국하여 보성전문학교를 거쳐 고려대 법대 교수가 되었다. 1945년에 미군정 문교부의 문교심의회위원으로 위촉되고, 고려대 도서관장도 되었다. 1946년 11월에 조선법학회 부회장, 동년 12월에는 미군정 사법부의 전형으로 변호사자격도 얻었다. 1947년 김구 선생을 모시고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설립할 때 학계에서는 안호상과 함께 참여하였다. 백범은 ‘月到千虧餘本質(달은 천번 이지러져도 본질은 남는다)’라는 휘호를 써주었다. 1949년에는 고시위원회 위원, 법전편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50년 2월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으로 자리를 옮겨 대학원 평의원회에도 참여하였다. 여기에는 최규동 총장의 권유가 있었는데, 당시 교수와 학생들의 좌익활동이 심하던 상황에서 진 학장에게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단호히 대처해달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넉달 후 6·25가 터졌고, 법대를 지키던 그는 좌익학생들에 의해 정치보위부로 납치되고 곧바로 평양으로 압송되었다. 거기서 4개월간 억류되었다가 제자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다시 서울로 올 수 있었다(진승록, 새해에 생각나는 사람, Fides 3호, 2014 참조).

후일 피납체험을 글로 써 ‘육군(1960)’지에 발표하였고, 김성칠 교수가 쓴 전쟁일기 ‘역사 앞에서(1993)’에도 진 학장의 납치와 귀환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1952년에는 고시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신생국가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공무원제도를 개선하였다. 1957년 금성중학교를 설립하여 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중 1961년 5월 성균관대학교 총장으로 내정되었으나 취임을 며칠 앞두고 5·16이 일어났다. 군사정권은 6·25 때 납북되었던 일을 문제 삼아 진승록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년여의 옥고를 치루었다. 그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1985년에 80세로 작고하였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안은 일생이지만 한국법학사에서 민법학의 선구자로서의 업적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논저로 ‘민법총칙 상권’ ‘민법총론’ ‘물권법’ ‘담보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과 논문들이 있다(이런 자료는 서울법대 역사전시실에 전시되어있다). 특히 1944년에 나온 ‘민법총칙 상권’은 한글로 된 최초의 민법학서이다. ‘민법총론(고려출판사, 1948)’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혔다. “(전략) 영미법의 영향을 받을 것은 피치못할 현상이라 할지라도 그렇다고 하여 민족과 풍속과 습성이, 따라서 법률감정이 상이한 우리민족의 법전을 편찬함에 있어선 영미법의 판례, 관습 등을 그대로 계승할 것이 아니고 조국에 있어서 영미법의 영향을 받을 것이란 것은 조국 본연의 법률사상, 판결, 관습, 조리 등으로써 기본이념을 삼을 것이란 제약 하에서만 이 이론을 용인할 것이라고 믿으며 또한 그리 하여야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하략).”

미군정을 거친 대한민국의 법 상황을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본서는 간결한 문체로 약술되어 고등준비생들의 필독서였다. 이러한 선구적 학문기초는 후학들에 의해 더욱 연구되고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진승록 교수가 서울법대사와 한국법학사에 뒤늦게나마 자리매김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딸의 증언에 따르면,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특히 셰익스피어에 밝았고, 시조창을 즐기기도 했다. 인간 진승록의 전기도 언젠가는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역사의 진전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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