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 과학과목 성적이 형편없었다. 요즘처럼 모든 과목을 두루 그리고 항상 잘 해야 대학을 갈 수 있는 시절에 태어났다면 나는 대학 입학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듯 싶다. 다행히 그때는 내신성적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예비고사와 본고사라는 것이 있었는데 법대가 속해 있는 문과의 경우 본고사에는 과학 과목이 없었다.

과학지식이 부족했다고 하여 살면서 곤란을 겪은 적은 없었다. 추운 겨울날에는 골프장 그린이 얼고, 가을날 가로수 잎은 단풍이 지고, 달은 차올랐다가 지는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 한다는 정도의 상식만 가지고도 충분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몇 년 전부터 과학 지식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심봉사가 눈을 뜨듯이 나도 자연과학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법률을 공부할 때 법의 연원부터 시작하듯이 과연 우주가 태초에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지구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등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나만 그런 것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분야에 관하여 많은 책들이 이미 나와 있었다.

빅뱅이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역산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138억년 정도 전에 빅뱅이 있었으므로 그때 우주가 시작되었고, 약 110억년 전에 우리 은하계(MILK WAY GALAXY)가 형성되었으며, 45억년 전쯤에는 지구가 속하는 태양계가 만들어졌다. 태양계는 우리 은하계의 중심으로부터 몇만 광년의 거리쯤 떨어져 있는 변두리에 속하며 우리 은하계의 이웃 은하계는 이름이 귀에 익은 안드로메다 은하계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체, 즉 단세포가 생긴 것은 약 35억년 쯤으로 추측하고 있다. 왜 빅뱅이 일어났는지,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그리고 최초의 생명체가 어떤 원리로 생기게 되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별들도 생물처럼 생로병사의 과정이 있으며 태양도, 지구도 결국은 소멸될 것이라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확실하다.

중고등학교 때의 형편없는 과학지식은 이제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과학 관련 책들이 정말 재미있는데, 호기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가는데 기초지식이 없으므로 그 책들을 제대로 읽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중고등학교 참고서를 일부 구입하여 읽어 보았으나 그 속에 담긴 짧고 부족한 설명은 다시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도 여전히 과학과목을 잘 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점만 새삼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지난 주말, 우연히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코스모스(COSMOS)를 보게 되었다. 1980년에 제작되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방송시리즈를 2014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1편을 보는 순간 완전히 빠져 들었다.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기법을 총출동시켜 우주 탄생의 역사부터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설명방식이 기가 막히게 훌륭하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어려운 부분도 많다. 너무 어려운 내용은 설명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아무리 쉽게 설명하려고 해도 듣는 사람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전달이 가능하다. 코스모스를 보는 틈틈이, 이해되지 않는 용어나 개념을 메모하여 네이버 지식백과에 들어가서 찾아보았다. 네이버 지식백과는 각종 백과사전으로 연결시켜 준다. 그 중 초등과학 개념사전의 설명이 내 수준에는 맞는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읽어야 할 책은 인문학이 아니라 자연과학 관련 책들이다.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인터넷 매체들은 매일 매일 심각한 이슈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거나 아니면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자연과학 지식은 이미 정답이 있는 문제들을, 따라서 다툴 필요가 없는 문제들을 골라내 준다. 또한, 지구환경의 오염처럼 정말 중요한 문제를 직시하게 해 준다. 정작 자연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객관적인 지식 그 자체보다는 과학자들의 엄밀한 태도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아서이다.

위대한 과학자들은 과거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큰 목소리가 아니라 힘들게 모은 객관적인 데이터로 자기를 주장한다. 본인이 세운 가설은 보다 더 타당성 있는 새로운 가설이 등장하는 경우 즉시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남은 평생 동안 자연과학 지식을 공부한다고 한들 성적이 우수한 고등학교 학생만큼도 못따라 갈 것이다. 밥벌이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공부는 내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재미를 낙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공부가 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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