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만 해도 국회는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의 대명사였다. 당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해머, 전기톱, 쇠사슬로 악화일로를 달려왔다. 지난 제18대 국회에서는 연례행사처럼 이런 폭력사태가 벌어졌고 2011년 11월에는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지기도 했다. 이런 폭력 사태를 눈 앞에서 지켜보면서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사실은 국회법 개정)의 입법화 이후에 제19대 국회에서는 다행히 아직까지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제19대 국회는 개원협상도 치열하게 벌어졌고, 새 정부가 출범한 2013년에는 정부조직법 개정 문제와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으로 여야가 계속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국회에서 대규모 폭력사태가 사라진 것이 국회선진화법 덕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에서의 폭력사태 발생가능성을 확연하게 줄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그렇지만 국회선진화법은 상임위원장의 여야 배분에 따른 정당정치와 책임정치의 왜곡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선진화법은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어정쩡한 입법’을 양산시키는 현행 시스템을 더욱 고착시킨다는 점에서 우려의 여지가 크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와 책임정치를 핵심으로 한다.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각 정당은 자신들의 정강정책을 내놓고 다른 정당과 경쟁을 한다. 선거과정은 각 정당 간에 정책의 합리성을 놓고 토론하는 절차나 다름없다. 선거는 여기에 대해서 국민이 최종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의석 수로 결론이 나면 과반 다수당이 그 정책을 입법화하고 거기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진다.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적 작동원리다.

우리 헌법상의 다수결의 원리도 이런 책임정치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헌법은 국회에서의 의결 요건을 규정하면서 헌법 개정이나 대통령 탄핵 등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되는 사안은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가중 다수결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그 이외에 일반적인 안건에 대해서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단순 다수결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선진화법 체제 하에서는 이런 현재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작동하기 힘들다. 국회선진화법 아래에서는 180석 이상을 차지하지 않는 한 어떤 정당도 자신들이 선거에서 내세웠던 정강정책을 입법화할 수 없다.

모든 입법과 예산배분은 소수정당과의 협상과 타협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 지도부 간 협상과 타협을 거치다 보면 정책은 합리성과 논리에 따른 일관성을 갖기 어렵다. 이보다는 정당 간 주고받기에 따라 어정쩡한 결정이 되기 쉽다. 이렇게 된 그 정책이 실패했을 때 어느 정당에도 책임을 지게 하기가 어렵게 된다.

또한 쟁점법안이 여야 지도부 간의 협상과 밀실타협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고, 이렇게 되면 국회 기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국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회 내의 공식적 절차를 통해 상임위와 본회의의 토론이 활발해져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국회선진화법은 결국 정당 간 타협에 의하지 않고는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질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최근 부동산 3법의 개정과정을 보더라도 2+2 회동을 통해 타결되었다. 이 때문에 국회의 공식적 절차보다는 정당 지도부 간 포괄적 협상이 중요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의원 개개인의 입지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의원들의 소속 정당에 대한 예속이 더욱 강화될 우려도 있다. 국회 운영의 투명성도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이런 국회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어정쩡한 입법’을 구조화하게 될 수 있다. 국회의 정책결정이 정당 간의 어정쩡한 타협점에서 이루어진다면 국회의 정책결정의 질도 구조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국가정책과 관련한 합리적인 토론을 기대하기 힘들다. 어차피 여야 간에 협상과 타협에 의한 결정이 되기 때문에 합리성을 중심으로 한 정책토론이 설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각 정당 간 정책대결을 중심으로 한 정책선거도 어려워진다. 현대 민주정치의 기본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정치에 있어서 대화와 타협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은 틀림 없다. 하지만 이것도 책임정치와 정당정치라는 민주정치의 큰 틀 안에 있는 하위 가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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