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전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나의 삶을 점검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지난 며칠 전 울산법원에 재판을 하러 내려가는 KTX 안에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느 역을 지날 때 중년의 부부가 탑승했습니다. 그들은 자리를 찾을 때부터 유난하게 떠들었고 자리에 앉자마자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약 20분쯤 지났을 때부터 그들은 조용해졌습니다. 객실 안의 조용한 분위기가 그들을 바꾸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법원 앞으로 지나갈 때 새내기 변호사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법률사무소 건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법정에서의 긴장이 아직 묻어 있었으나 상기된 모습으로 볼 때 첫 출발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진정한 변호사가 된 듯한 모습입니다.

엘리베이터 앞의 검색대를 지나서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중년을 넘어선 나이의 변호사님이 겸손한 모습으로 재판장에게 변론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변론을 진행하는 젊은 변호사님은 재판장과 의견이 달라보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례취지를 거론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들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들은 다른 변호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도 바꾸는 것은 아닐까요?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는 자주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내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거울 속의 나를 살핍니다. 가끔은 상대방의 눈을 통하여 나의 상태를 점검합니다. 그래도 나는 나를 제대로 보기 힘듭니다. 내 눈이 나를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대부분 선량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반복된 삶 속에는 잘못된 학습효과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시스템이 계속 이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갈매기의 무리나 연어 떼처럼 시류나 대세를 쫓아가려는 성향도 있습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온 방법들입니다.

다수에 속했을 때 안정감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도 대부분 자신의 삶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삶의 속도를 높일 생각을 하곤 합니다.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래에 대하여 꿈을 꾸는 사람들도 그 꿈이 영글어가는 시간에 대하여는 기다리기 힘들어합니다. 그 꿈을 확신하지 못해서일까요. 그래서 과거의 족적에 대해서만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새벽녘마다 나의 삶을 점검할 때 항상 아쉬운 것은 지나간 세월입니다.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지만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시점에 지금 깨닫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내 삶을 움직이고 있는 시간의 축을 생각할 때 뒤돌아보고만 있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는 듯합니다. 시간이 궤도를 따라 앞으로 가고 있는데 뒤를 보고 있을 때 이를 후회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10년 앞에 가서 현재의 나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잘 하고 있습니까?”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묻고 있습니다. 마음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나의 계획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거나 그 계획이 그냥 계획에만 머물 때 내 마음은 어딘가에 묶여 있는 듯한 정체감을 느낍니다.

사람이 계획하면 그대로 이루어질까요?

우리나라에 개발독재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 나도 5개년 개발계획을 세우곤 하였습니다. 사실은 지금도 1년 계획, 5년 계획 그리고 10년 계획을 세우면서 점검합니다. 사람들이 “하면 된다”는 구호를 외칠 때 나도 외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치지 않습니다. 그 소리는 크더라도 자칫 공허한 메아리 같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휴업변호사 수가 몇천명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들에게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의 계획이 없어서 나의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가능한 일만을 계획한다면 그 계획은 삶을 바꾸는 꿈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삶을 바꾸는 꿈’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내 마음에 가득 차오르는 설레는 마음을 항상 느끼고 싶습니다. 봄날의 소생하는 빛이 내 삶에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빛으로 내 꿈꾸는 미래가 구체화되기를 원합니다. 그 꿈이 내 삶을 이끌어가고 그 꿈이 내 삶의 내비게이터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때 나는 꿈꾸는 자의 덕목을 발견하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결단코 확신과 기다림입니다. 꿈에 대한 확신은 꿈에 대한 사랑입니다. 꿈에 대한 기다림은 다른 꿈에 대한 권리포기입니다. 다른 욕심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 꿈이 올바른 꿈이라면 나의 삶을 견인할 것이고 나의 미래를 이끌어갈 것입니다. 그때 그 꿈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내비게이션의 목적지입니다. 내가 가야할 길입니다. 변호사의 업무는 목적이 아닙니다. 변호사의 길은 그 꿈으로 가는 통로이거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내 꿈이 진정한 꿈이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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