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 하늘에서 사다리가 땅에 내려와 그 끝이 하늘에 닿아 있었다. 푸른 밧줄로 엮은 사다리였다. 천사가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는 보았지만 만져볼 수 없고 붙잡을 수도 없었다. 그가 꿈에 본 사다리는 신이 약속한 축복의 징표였다. 성서 창세기 이야기다. 나에게도 한때 사법시험은 붙잡을 수 없고, 닿을 수도 없는 곳에 있는 높고 푸른 사다리였다.

지나간 일들은 간절한 그리움으로 되돌아보아도 소급되지는 않지만 소멸되지 않는다. 유년의 결핍은 삶에 불편함과 부끄러움도 주었지만 결핍에 내포된 시련과 좌절은 나를 더 단단하게 했다. 초등학교 졸업식 전 날, 졸업식 리허설을 했다. 우등상 대표로 상을 받았다. 단상을 내려와 앉아 있는데 교감선생님이 담임을 불러 “저 학생 옷이 좀 그러네. 내일 높은 분들도 많이 오시는데 바꿔보지” 했다. 잠바는 꿰맨 자국이 있고 바지는 군용담요를 잘라 만든 ‘담요바지’였다. 교감님 대못질에 졸업식 날 옷 잘 입은 친구가 대신 받았다. 가난하면 상도 못 받는 ‘개털’이네. 붉어진 눈에 조막만한 두 주먹을 쥐어봤지만 마음뿐, 출구도 없었다.

친구들이 큰 도시로 중학교 시험치러 가는 날, 나는 섬진강 강변에 갔다. 강바람이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다.
형편상 시골중학교는 포기하고 인가받지 않은 학교에 갔다. 한 마지기 밭에 식구들 입이 달려 공부는 뒷전이고 여름엔 토요일 오후면 밭에 갔다. 하루는 밭일 가기 싫어 “어무니, 아까 라디오에서 태풍이 올라 온다네” 핑계대자 어머니는 “태풍이 그럼 올라오지 내려 간다냐? 뻘소리 말고 가자.” 목줄 맨 개처럼 깨갱하고 끌려갔다. 밭일을 하는데 책을 들고 강변을 거니는 사람이 있었다. 천석꾼 백씨댁의 서울법대생 ‘천재형님’이다. 사법고시 공부하는 형은 소문에 책을 읽고나서 찢어서 씹는다고 했다. 공부는 그냥 외워 사진박듯이 머리에 박아야 하는데…고시는 형처럼 한번 더 씹어야 붙나보다 했다.

재학 중 고교입학 자격시험에 운좋게 붙었다. ‘원 플러스’로 미리 시험칠 기회가 생겨 서울서 제일 좋다는 고교를 골랐다. 붙으면 운명이 바뀔지 아나? 국영수는 해볼만 한데 과학시험이 형광등 필라멘트가 어쩌고저쩌고, 호리병 실험기구에 알콜 섞으면 어쩌고 하는 문제들. 나같은 촌놈은 대체 써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물건들이니… 끙끙대다 시험지를 접고 나왔다. 은근히 부아가 났다. 담에 서울 올 땐 ‘천재형님’도 떨어진 사법고시로 결판 내자. 청명에 죽나 한식에 죽나 이판사판 아니냐, 인생 누구나 한방은 있다는데 결심하고 내려왔다.

대학에 오니 사법시험은 학원도, 과외도 없어 살 것 같았다. 후지모토 겐고의 ‘3시간 수면법’도 읽고, 잠 안오는 약 ‘타이밍’을 너무 먹어 비몽사몽하다 기절도 해보고 별짓 다 해 봤지만 낙방은 연중행사, ‘야곱의 사다리’는 점점 멀어졌다.

졸업 후 결혼했다. 아내는 직장에 다니고 나는 조교를 그만 두었다. 고시원 첫해 또 떨어졌다. 운이 여기까지인가, 괜히 불가능한 노력을 하는 건가, 포기할까? 회의도 들었다. 딱 한번만 더 해보자 결심하고 담배도 끊었다. 잠을 설치다 새벽에 밖에 나왔다. 몸에서 자꾸 땡겨 뒷산에 던져버린 담배와 라이터를 다시 찾으러 갔다. 담배는 찾았는데 라이터는 없었다. 딱 한대만 피려고 성냥을 찾으니 없어 주방에 가 활활 타는 연탄불을 집게로 꺼냈다. 입에 바짝대고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앗! 뜨거” 입술을 데고 머리털에도 불이 붙었다. 연탄불은 깨져 난장판이다. ‘어휴, 이 쪼다 같은 놈아’ 쪽팔려 탄식했다.

며칠 후 아내가 왔다. 입술에 생긴 물집과 반쯤 탄 머리털로 웃기게 된 날 보고 제발 몸 좀 생각해 공부하라고 했다. 썩을 놈의 담배 피려다 ‘주둥이’데고 머리털 꼬시른 줄도 모르고.

1988년 올림픽 열린 해 합격했다. 풍차를 보고 무지막지 돌격하는 돈키호테처럼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해 연말 KBS제야 송년특집 생방송 ‘올해의 인물’에 출연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미스코리아 진, 학력고사수석, 나. 자리도 얼씨구나 미스코리아(김성령) 옆이다. 가슴이 벌렁댔지만 집에서 ‘암사자’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어 미스코리아 귓불만 실컷 봤다. 방송 나간 후 ‘마담뚜’아줌마가 집에 전화를 했다. TV에서 봤다며 날 찾았다. 아, 방송타고 떴구나. 아내는 아주 상냥하게 “네에, 맞는데요. 근데, 왜요?” 마담이 “좋은 혼처가 있는데 혹시…” 하자마자 아내는 금방 열받았다. “그 사람 결혼했어욧! 다시는 전화 마세욧!” 전화를 쾅 내동댕이쳤다. 임신한 ‘암사자’를 건드렸으니 뚜아줌마 간이 그냥 붙어있는지 모르겠다. 입소문 탔나? 다시는 뚜마담 전화가 없었다.

사법시험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게 하고 감당해 낼 수 없는 시련을 견디게 해준 높고 푸른 사다리였다. 유년의 시련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지나고 나서 알았다. 고난을 극복하는 길은 고난을 통과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것을. 그 사다리가 이제 하늘로 걷혀 올라가려고 한다. 아쉬운 작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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