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인(巨人) 법조인의 출현을 기대하며 -

새해를 맞아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 의미에서, 원초적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열은 뜨거운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로 이동하며, 반대과정은 ‘자발적으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같은 의미에서 엔트로피(무질서) 법칙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현상은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보다 더 무질서한 방향으로만 진행됩니다.”

인간세상도 전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그냥’ 찾아오지 않습니다.” 정의가 살아 숨쉬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희생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평범하게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견에 무비판적으로 따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훌륭하고 유용한 일을 해내려는 사람은, ‘대중의 승인이나 평가를 기대하거나 추구해서는 안 되며, 열정적인 가슴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람들의 공감과 동참만을 기대’해야 합니다.

“불의(不義)가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단 한가지이다. 그것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선지자가 이야기하였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폭풍’이라는 시에서, 정확히 같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그루 나무를 보라. /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나는 저 한마리 새를 보라. // 은사시 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사람살이에 있어서 ‘안전’과 ‘용기’는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즉 용감한 동시에 안전한 사람은 될 수 없습니다. 미식축구의 격렬한 몸싸움은 원치 않으면서, 번쩍이는 헬멧과 멋진 유니폼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는, 용감해지고 싶은 열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즉 무섭고 어렵지만 옳은 일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영혼 깊숙한 곳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자신의 비겁한 모습에 그토록 수치스러워 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이와 같은 용기는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 것일까요. 우리의 현자들은 “용감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용감한 사람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으라”고 이야기 합니다. 즉 용기는, ‘힘든 시기가 시작될 때부터,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힘든 시기를 겪고 나서, 그 시간이 어쨌거나 아주 힘겹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때에 비로소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은 자신이 목격한 것을 보고 변화하지, 듣기만 해서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변해서 모범을 보여주어야 변화의 추동력이 생기게 됩니다. 즉 용기를 가지고 행동한 사람이 크게 성공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아야만 자신도 적극적으로 그것을 따라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법조인들 특히, ‘최종적으로’ 무엇이 정의인가를 선언해야 할 책무를 진 ‘사법부의 구성원들’이 유념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즉 무엇이 ‘정의인지를 안다’는 말이나, 무엇이 ‘정의라고 확신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아니하고, 그 ‘정의를 제때에 선언’해야만 비로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년 내내 연습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도 정작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는다든가, 근사한 저녁식사를 위해 장을 봐서 재료를 정성껏 준비해 놓고도 정작 요리를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준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사법부의 구성원에 대하여, ‘성공을 했고 머리도 좋으나, 자기만족과 자만심에 빠져,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평판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또한 ‘그들은 우리사회에 근본적으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쳐다보기를 거부함으로써, 권력을 가진 자의 침묵에 의한 배신’이라는 비난을 받아서도 아니 되겠습니다.

시인 휘트먼은 법률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통렬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성숙함을 위해 담금질하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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