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를 벗어나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인터스텔라(Interstellar)’가 인기다. 영화는 환경오염으로 호흡과 농업이 불가능해진 지구를 배경으로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새로운 행성을 찾는 우주비행사들의 모험과 갈등,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가족애를 그렸다. 토성근처의 웜 홀을 통해 항성간의 여행시간을 줄인다는 발상은 흥미로운 일이고, 시간이라는 차원을 공간적으로 표현한 상상력이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그러나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공이, 상대적으로 나이를 적게 먹은 반면, 지구에서 거주하였던 딸이 할머니가 되어 임종을 앞두고 재회하는 장면이었다. 할머니가 된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이 어떤 사람의 운동속도에 따라 달리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다.

물리적 시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다양한 내면적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지낸다. 잠이 들어 깨어날 때까지의 시간이나 마취가 되었다가 깨어나는 시간의 흐름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금방 지나가므로 매우 짧게 느껴진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평소 가고 싶던 지역으로 여행을 갈 때, 시험공부를 할 때 느끼는 시간은 왜 이리 빠른가? 반대로 무료하고 할 일이 없을 때, 지루한 일을 반복할 때,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내어야 하는 경우의 시간은 왜 그리 길고 느리게 흘러가는가? 이렇듯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의 흐름이 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시간뿐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감을 보여준다.

변호사의 시간도 그렇다. 다음 기일을 1달 이상 여유 있게 받아두고서도 변론기일을 1주일 앞두고서야 준비서면의 작성에 들어가니, 다음 재판기일까지의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모른다. 월요일이 시작되면 눈 깜짝할 사이에 금요일 오후가 된다. 월급날과 임대료를 납부하는 월말은 왜 이토록 빨리 돌아오는가? 당사자들이 느끼는 시간은 그 반대이다.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면, 첫 기일은 왜 그리 오래 걸리는가? 대법원에 상고이유서를 냈는데, 재판결과는 언제쯤 알 수 있는가? 이렇듯 법조 주변의 시간도 누가 느끼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한해를 보낸다.

돌이켜 보면, 올 한해는 참으로 많은 이슈와 사건, 사고로 얼룩진 한해가 아닐 수 없다. 연초에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에 이루어진 국가 정보기관 종사자들의 불법적인 인터넷 댓글 사건과 그 재판으로 사회가 시끄럽더니,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로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생과 이별하는 장면은 수백만 국민의 슬픔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한해를 소모적으로 보내더니, 최근에 발생한 최고권력기관 주변의 갈등과 고소, 고발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국가의 혼란을 수습하며 국력을 모을 수 있는 리더십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지표는 어둡고, 가계부채는 늘어나며,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망설인다. 21세기 중반이 되면 인구의 감소를 예상하고, 다음 세기가 되면, 민족의 소멸을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 사회 전체로 보면, 올해 한해의 시간의 흐름은 왜 이리도 느리고 더딘 것일까?

이제 한해를 보내면서, 내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생각해 본다. 변호사로서는 내년에는 좀 더 여유있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미리 미리 기록을 검토하고 의뢰인과 면담을 충분히 하여 좀 더 정치하고 설득력 있는 변론을 하면 좋겠다. 매월의 급여일과 월세를 납부하는 시간도 그리 빠르게 느껴지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마주할 한해의 시간도 좀 더 느긋하고 따뜻한 시간이면 좋겠다. 눈물 흘리고 가슴 조아리는 사고나 재난의 소식보다는 노사간에 타협하고 계층간에 갈등이 줄어드는 온기 가득한 한해이면 좋겠다. 일제하의 치욕적인 식민지생활과 남북분단에 이은 3년간의 전쟁을 치러내고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경험을 기초로,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정의롭고 따뜻한 시장경제의 틀이 더 튼튼해지면 좋겠다.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대화와 타협으로 잘 조정되고,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 사건은 기본권의 가치와 국가공동체의 공동선에 근거한 사법부의 지혜로운 판단으로 평화롭게 마무리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살아갈 2015년은 언제 지났는지 모를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면 좋겠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독자들과 법조 모든 가족들이 더 건강하고, 활기차며 희망을 갖고 한해를 시작하기를 기원한다. 또한 새해에는 우리 나라와 이 민족에 더 큰 융성의 기운이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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