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감독의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한국 전쟁 영화 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액션배우 장동휘, 배우 최민수의 아버지 최무룡, 젊은 날의 구봉서 등이 출연했던 이 영화는 당시의 특수 효과 수준으로서는 놀랄 만큼의 사실적인 전투 장면으로 화제가 됐다. 그 비결은 ‘실탄’이었다. 모의 총기를 구하는 것보다 국방부의 협조를 얻어 실탄을 쏘아 대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기도 했거니와 6·25 참전 용사 출신의 이만희 감독은 과감하게 실탄 사격을 주문하여 배우들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역시 실제 폭탄을 사용한 폭발 장면에서는 엑스트라의 다리 하나가 날아가서 논 7마지기로 보상하는 일도 있었다.

판에 박힌 반공영화가 판을 칠 때였으나 천재 감독 이만희 감독의 영화는 달랐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역시 반공영화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영화 속에는 반공 뿐 아니라 전쟁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분대장 장동휘의 대사를 빌려서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이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이 죽음의 현장을 증언하고 인간에게 전쟁이 꼭 필요한지 물어보라!”

즉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류의 반공 영화와는 사뭇 달라도 많이 달랐다. 이런 독특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만희 감독은 대종상과 청룡영화제상을 휩쓰는 개가를 이루지만, 2년 뒤 그 ‘독특한’ 색깔이 담긴 영화 때문에 된서리를 맞는다.

문제의 영화는 ‘7인의 여포로’라는 영화였다. 대략의 줄거리만 설명하자면 인민군의 포로가 된 7인의 여포로를 중공군이 성폭행하려들자 이를 제지하던 인민군 장교가 그들을 쏘아 죽이고, 이 때문에 북한에 머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자유의 품으로’ 귀순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감독에게 “괴뢰군을 너무 멋있게 그렸다”는 혐의가 씌워진 것이다.

1964년 12월 18일 서울지검공안부는 영화 ‘7인의 여포로’가 “감상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군을 무기력한 군대로 내건 반면, 북괴의 인민군을 찬양하고 미군에게 학대받는 양공주들의 비참상을 가장묘사, 미군철수 등 외세배격 풍조를 고취하였다”는 혐의로 입건한다. 유명한 ‘7인의 여포로’ 사건이다. 전쟁 끝난 지 1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당시 검찰의 논고는 킥킥거리다가 종국에는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공산계열인 북괴와 중공은 공산주의 이념이 동일하고 대한민국을 침해함으로써 상호간 무력충돌을 몽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이 여군들을 겁탈하려는 것을 괴뢰군 수색대장으로 하여금 제지케하여 (중공군을 인민군이 막는다는 자체가 하면 안 되는 설정이란 말이야!) 위안부로 하여금 ‘장교님의 행위는 훌륭했어요’ 라는 등 칭찬하게 한 것(세상에 괴뢰군 장교를 이렇게 멋있게 그리다니!)은 결과적으로 반 국가단체의 국가활동을 고무, 동조, 찬양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논고를 쓰면서 담당 검사는 비장했을까. 슬펐을까 아니면 스스로 우스웠을까.

극작가 한우정과 감독 이만희는 이 참담한 꼴을 당한 뒤 색다른 의기투합을 한다. “야 이거 골치 아프니까, 진짜 반공 영화가 어떤 건지 한번 보여 주자.” 그래서 만든 영화가 ‘군번없는 용사(1966)’였는데 누가 뭐래도 흑과 백이 선연하고 악마와 천사의 대립구도 명백한 이 영화에도 엉뚱한 시비가 걸렸다. 서슬 푸른 중앙정보부가 또 이만희 감독을 호출한 것이다. “인민군 장교가 너무 멋있게 그려졌잖아!” 그도 그럴 것이 그 배역을 맡은 것은 당대의 미남 배우 신성일이었던 것이다. 이때 이만희 감독이 했다는 변명이 얼마 전 신성일의 자전 수기에 등장했다. “신성일이 (인민군 군복을) 입고 있으니 그렇게 멋있지, 다른 사람이면 그렇게 멋있었겠습니까?” 참 서글픈 변명이요, 처량한 시대였다.

옛날 얘기라고 웃어넘기기에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도 그렇게 우아하지는 못하다. 나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정보기관이 남의 나라 공문서까지 위조해 가며 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가는 일이 있었고 법원의 판결로 시비가 가려지자 이제는 변호사들의 행동에 전혀 생뚱맞은 시비를 걸고 있는 요즘 아닌가. 삼류 영화에서도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고 수갑을 채우면서 “너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데 명색이 대한민국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유로 검찰에게 시비가 걸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는 뜻이다.

1964년 12월 18일 발군의 영화감독 이만희의 어깨를 틀어쥐었던 반공법, ‘괴뢰군을 인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치도곤을 들이댔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 것은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 30여년 전 그런 일이 있었더랬다. 오늘날도? 글쎄 비슷한 일이 있었더랬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