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언론과 각종 미디어는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발생한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과 그로 인한 일련의 사태에 대한 보도를 시시각각 쏟아내고 있다.

이 사건은 2014년 8월 9일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 흑인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길을 걷던 중 퍼거슨 시 소속 백인경찰에게 여러번 총격을 받은 후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퍼거슨 시 경찰은 마이클 브라운으로 보이는 사람이 편의점에서 종업원을 거세게 밀치고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담긴 CCTV를 공개하면서 “마이클 브라운이 편의점 강도 용의자였으며, 그에게 총격을 가한 것은 범행 이후 마이클 브라운 일행과 경찰관이 거친 몸싸움을 하다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사건 발생 직후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항복한 브라운을 경찰이 쫓아가 총을 쐈다”는 목격자들의 상이한 진술이 나오면서 비무장한 흑인청년을 백인경찰(백인 경찰관의 이름은 대런 윌슨으로 추후 공개된다)이 과잉 대응하여 사망하게 한 인종차별 사건으로 전환되어 퍼거슨 시 전체에 흑인들의 소요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퍼거슨 시는 필자가 머무르고 있는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에 속한 시로 사건 초기에 발생한 소요사태는 야간 통행금지, 주방위군 소집 등의 비상조치로 진정된 상태이고 현재는 평화적 시위만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조만간 브라운을 사살한 경찰관에 대한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대배심 결정에 따라 또 다른 소요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어 현지는 초긴장 상태에 있다. 이번에는 미국 형사사법절차와 관련하여 우리와 상이한 점과 미국 내에서 반복되고 있는 인종갈등 문제를 생각해 본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검사의 기소독점주의를 취하고 있지 않다. 미국의 검사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수사를 하지 않으며, 연방 정부나 주 정부의 법률 해석과 법 집행, 공소 유지, 연방 정부나 주 정부를 원고와 피고로 하는 소송 수행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검사는 연방검사와 지방의 검사장으로 구분되는데, 연방검사는 대통령이 모두 임명하고, 지방 검사장은 주민들의 직선으로 선출된다. 얼마 전에 미국의 선거일(election day, 매년 11월의 첫 월요일의 다음 화요일)이 있었고 카운티 단위로 연방 상하원의원, 시장을 비롯하여 보안관, 판사, 검사장, 감사원장 등을 주민이 모두 선출한 바 있다. 미국 형사절차상 기소 여부는 통상 민간인들로 구성되는 대배심에서 결정하는데, 여기서 검사는 대배심을 소집하고 해당 사건의 수사사항을 설명할 권한을 가진다.

흥미롭게도 세인루이스 카운티의 검사장(로버트 매컬록)은 그의 권한으로 대배심을 거치지 않고 문제의 경찰관을 기소할 수도 있었으나, 수사가 미처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대배심을 조기에 소집하여 현지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는 검사장의 가족사(그의 아버지는 경찰이었으며 그가 12살 때 아버지가 일선 근무 중 사망하였다)를 들어 공정한 사건 처리를 위해 특별검사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대배심의 판단에 따른 또 다른 인종갈등의 불씨가 내포되어 있어 향후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재 마이클 브라운 사건의 대배심(12명)은 3명의 흑인(남성1명, 여성2명)과 9명의 백인(남성6명, 여성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와 같은 구성은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의 인종적 전체 구성(백인 75% 이상)상 불가피한 부분이나, 이 사건이 발생한 퍼거슨시 주민의 66%가 흑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이 내려질 경우 인종갈등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미국 내에서 흑인용의자에 대한 백인경찰의 과잉 진압에 따른 인종갈등 문제는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는데, 1992년 흑인 로드니 킹을 구타한 백인 경찰관들에게 무죄가 선고된 데에 분노한 흑인들이 소요를 일으켜 59명이 숨지고 많은 한인상가에 큰 피해를 준 LA폭동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건이다. 다행스럽게도 이곳 세인트루이스에는 LA만큼 한인들이 많지 않아 이번 사건의 여파로 특별히 우리 교포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

길지는 않지만 필자가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불과 150년 전에 흑인노예제가 존재했다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떠한 인종차별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눈에 보이는 차별이 없어졌고 흑인대통령까지 나왔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문화적 이유로 인종 간의 교육, 소득, 거주지역 등 인종 간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는 이상 이 같은 인종갈등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도 점차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데, 나와 다름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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