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에 관해 입법예고된 개정법률에 의하면, 법원은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을 ‘존중해야 한다’. 법원은 법률에 규정된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배심원 평결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개정된 법률에 의한 배심원 평결의 권한을 ‘사실적 기속력(de factor binding)’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법원이 배심원의 평결을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이유가 법률에 상당히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법률 개정의 취지가 진솔하게 실현될지에 관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다.

어쨌든, 아직은 유무죄 여부와 양형에 관한 배심원 평결은 법원의 판결을 구속하지 않고 다만 권고의 의미를 가진다. 한가지 이유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서다. 두번째 이유는 배심원의 판단력과 공정성 등에 대한 신뢰가 아직 확고하지 않아서다.

배심재판제도가 가장 강력하고 진보적으로 유지되는 미국에도 현재 4개의 주(델라웨어, 알라바마, 플로리다, 인디애나)에서 대한민국과 같이 배심원 평결(다수결)은 권고적 효력을 가지고, 최종 판결이 판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일급살인죄에서 사형 혹은 종신형을 결정하는 양형 판단에 그러한 혼합결정모델이 사용된다. 미국의 모든 주에서 사형여부 판단은 원래 전통적으로 배심원들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몇개의 주에서 배심원들이 사형 평결을 해야함에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동안 배심원들을 완전히 배제한 양형재판에서 전적으로 판사에 의해 사형결정이 이루어지다가, 2002년에 연방대법원이 판사에 의한 사형결정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하면서 위헌시비를 회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권고적 효력만 가지는 배심원 평결을 다시 끼워넣기 한 것이다.

코넬대학의 벨러리 한스 교수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처음부터 전적으로 판사에 의한 판결, 혹은 배심원의 권고를 ‘적절히 고려’해야 하는 판사의 판결에 의해 사형결정이 이루어질 때, 유죄가 확정된 일급살인사건의 사형판결 비율이 실제로 현저히 증가하였지만, 그 판결의 질은 더 낮아졌다.

예를 들면, 백인 피해자를 살해한 흑인 피고인이 사형판결을 받는 비율, 여성피해자를 살해한 남성 피고인이 사형판결을 받는 비율 등이, 중요한 양형인자들과 사건특성들을 통제한 후에도 다른 피해자·피고인 인종, 성별 조합의 사례들에서 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또한 미국의 ‘사형배심프로젝트’에서 배심원의 사형평결이 권고적 효력을 가지는 3개의 주와 기속력을 가지는 11개 주에서 사형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평의에 참여한 배심원들을 재판이 끝난 후 조사(인터뷰)하였다. 그 결과, 권고적인 평결을 위해서 평의한 배심원들은 기속력을 가진 배심원들보다 평결에 대한 책임감이 낮았고, 평의 시간이 짧았으며, 평의토론이 철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Bowers et al., 2006).

대한민국에서는 배심원에 의한 판결이 위헌이고, 미국에서는 판사에 의한 판결이 위헌이라는 이유로,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권고적 효력을 가지는 배심원 평결이 활용되고 있다.

반면, 두 국가에서 사용되는 권고적 효력의 공통점은 배심원에 대한 불만과 불신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불신이 아마도 권고적 효력에 대한 진짜 이유일 것이다.

심리학에 ‘자기충족적 예언’이라는 개념이 있다. 미래의 일을 예언하고, 그 예언이 충족될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을 부지불식간에 조성하고, 그래서 예언이 충족된다는 개념이다. 즉, 예언 때문에 예언이 실현되는 현상을 일컫는 개념이다. 배심원의 판단력과 공정성 등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여 그 판단의 기속력을 배제하고, 기속력 없는 평결을 위하여 배심원들은 책임감 없는 질 낮은 평의를 하게 되며, 질 낮은 평의가 잘못된 평결에 귀착되는 경우들이 필연적으로 생기면, 배심원의 결정에 제한적인 권한만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탁월한 예지력을 다시금 확인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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