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7도616 판결

I. 사건 개요
피고인이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피해자를 때리고 양쪽 손과 발목을 테이프로 묶고 베란다로 끌고 간 후 베란다 창문을 열고 피해자를 난간 밖으로 밀어 12층에서 떨어지게 하여 살해하였다는 살인 혐의로 공소제기가 되었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때리고 양쪽 손과 발목을 테이프로 묶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살인의 고의가 없었기에 베란다 창문을 통해 피해자를 밀어서 떨어지게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였고, 원심은 위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II. 판결내용
1. 공소제기된 범죄사실을 증명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명이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 있어서 ① 피고인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② 범행의 동기, ③ 피해자의 키와 이 사건 아파트 베란다의 높이, ④ 피고인의 행적 등 유죄의 의심이 가는 여러 정황이 있음은 사실이나 그와 같은 사정을 모두 종합하더라도 피고인이 이 사건 살인의 범행을 하였다고 단정하기에는 여러 합리적인 의문점을 배제하기가 어렵다.

2. 법원이 검사에게 공소장변경을 요구할 것인지 여부는 재량에 속하는 것이므로, 법원이 검사에게 공소장의 변경을 요구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
위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원심이 이 사건 살인죄의 공소사실을 상해치사 또는 감금치사죄로 공소장변경을 요구하지 아니한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3. 법원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심리의 경과에 비추어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공소장이 변경되지 않았더라도 직권으로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과 다른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와 같은 경우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과 대비하여 볼 때 실제로 인정되는 범죄사실의 사안이 가볍지 아니하여 공소장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적정절차에 의한 신속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형사소송의 목적에 비추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면 법원으로서는 직권으로 그 범죄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

원심 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원심은 그 채택 증거들과 제1심이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여, ①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피해자를 베란다로 끌고 간 후 베란다 창문을 열고 피해자를 난간 밖으로 밀어 12층에서 떨어지게 하였다는 점’을 제외한 나머지 공소사실은 모두 인정된다고 판단하였고, ② 피고인도 피해자를 때리고 양쪽 손과 발목을 테이프로 묶었다는 등 살인의 점을 제외한 나머지 공소사실을 전부 시인하고 있어 이 부분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여도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다. 그리고 ③ 피고인이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어 서로 신뢰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는 피해자에 대하여 위와 같은 범행을 한 점, ④ 그 구체적 행위의 태양이나 전·후의 경위, 피해자가 발이 묶인 채로 추락하기까지 한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이 인정한 위와 같은 범죄사실만으로도 살인죄에 비하여 결코 사안이 가볍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은 경우 검사의 공소장변경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위 공소사실에 포함된 나머지 범죄사실로 처벌하지 아니하는 것은 적정절차에 의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형사소송의 목적에 비추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고 할 것이다.

III. 검 토
1. 문제의 제기
법원의 공소장변경요구에 대한 법적 성질과 검사가 법원의 공소장변경요구에 따르지 않은 경우의 효과가 문제되고, 다음으로 공소사실의 축소사실이 인정되는 경우에 법원이 직권으로 그 축소사실을 인정하여야 하는지가 문제된다.

2. 공소장변경요구의 법적 성질
법원의 공소장변경요구에 대한 법적 성질에 대하여 학설로 ① 의무설은 형사소송법 제298조 제2항에서 ‘법원은 … 요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문리해석상 당연하고, 국가형벌권의 적정한 행사를 위하여 심판대상에 대한 법원의 보충적 직권개입을 인정한 제도의 취지에도 적합하다며 법원의 의무라는 견해이고, ② 재량설은 형사소송법이 당사자주의를 강화하여 검사가 제출한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만을 심판의 대상으로 하면서 공소장변경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취지를 고려하고 공소사실의 변경은 검사의 권한에 속하므로 법원은 검사가 제기한 공소사실의 범위 내에서 판결하면 족하고 적극적으로 공소장변경을 요구할 의무가 없으므로 법원의 권리 내지 재량이라는 견해이고, ③ 예외적 의무설은 공소장변경요구는 원칙적으로 법원의 재량에 속하지만 법원이 공소장변경요구를 하지 않고 무죄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현저하게 정의에 반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법원의 의무가 된다는 견해로 현재 다수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판례의 태도를 보면 공소장변경제도의 도입 이전에는 법원이 검사에게 공소장변경을 요구할 권리도 없고 의무도 없다는 입장이었다가(대법원 1970. 3. 10. 선고 69도1157 판결) 1973년 제3차 개정에서 공소장변경요구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이를 의무규정이 아니라 재량규정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의무규정으로 입법하려고 하면 과연 어떻게 규정하여야 하는지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판례는 제298조 제1항의 해석과 관련하여 법원은 검사의 공소장변경허가신청이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하지 아니하는 한 이를 허가하여야 한다고 하여 법원의 허가는 의무적이라고 해석하면서도(대법원 2013. 9. 12. 선고 2012도14097 판결) 공소장변경요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합리적인 논거도 없이 그냥 ‘법원이 검사에게 공소장변경을 요구할 것인지 여부는 재량에 속한다’며 의무규정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이 당사주의적 요소인 공소장변경제도를 인정하면서도 개정을 통해 직권주의적 요소인 공소장변경요구제도를 추가로 도입하여 ‘법원이 공소장변경을 요구하여야 한다’고 명시한 취지를 살펴서 검사가 공소장변경을 신청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원이 당연히 공소장변경요구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권한이며 재량이라는 이유로 행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적법절차에 의한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형사소송의 목적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법원의 검사에 대한 공소장변경요구는 형사소송법 제298조 제2항의 문언해석에 따라 심리의 경과에 따라 상당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권리가 됨과 동시에 의무도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3. 공소장변경요구의 효과
법원이 공소장변경요구를 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검사가 이에 따라 공소장변경을 신청하게 되고 형사소송법 제298조 제1항에 의해 법원이 공소장변경을 허가하는 등 원만히 공소장변경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검사가 법원의 공소장변경요구에 따르지 않는 경우의 효과가 논의된다. 법원이 공소장변경요구를 하여도 검사가 이에 불응하여 공소장변경을 신청하지 않는다면 공소장변경에 대한 허가결정을 할 여지가 없어서 공소장변경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종래에 검사가 법원의 공소장변경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법원의 요구에 의해 자동적으로 공소장변경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는 형성력효력설이 있었으나 현재는 주장되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이 공소장변경요구에 의해 공소장변경이라는 형성력효력은 발생하지 않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설로 ① 명령적 효력설은 법원의 공소장변경요구에 의해 검사에게 복종의무가 인정되므로 이에 따라야 한다는 견해이고, ② 권고적 효력설은 법원의 공소장변경요구는 검사에 대하여 권고적 효력에 불과하다는 견해이고, ③ 수정된 명령적 효력설은 법원의 공소장변경요구에 대하여 검사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음은 물론이고 예외적으로 그 불이행에 대한 대처방안까지 인정하여야 한다는 견해인데, 위 명령적 효력설에 의하더라도 검사의 공소장변경신청을 현실적으로 강제할 수가 없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예외적으로 법원이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법원에게 국가형벌권을 실현시켜야 할 의무가 부과되어 있으므로 법원은 검사의 공소장변경요구 불이행을 이유로 공소장변경 없이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검토해 보면 명령적 효력설과 권고적 효력설에 의하는 경우에 공소장변경요구제도의 실제적 의미가 거의 없게 되며, 수정된 명령적 효력설에 의할 때에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하여 그 의미를 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법원이 검사에게 공소장변경을 요구하였다면 이로 인해 공소장변경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이고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실질적 불이익을 초래하지도 않으므로 법원으로서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하는 대신 공소사실이 아닌 공소장변경을 요구한 범죄사실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4. 공소사실의 축소사실에 대한 법원의 직권 인정의 의무성
공소사실의 축소사실이 인정되는 경우에 법원이 직권으로 그 축소사실을 인정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학설로 ① 의무설은 축소사실이 공소사실에 포함되어 법원의 현실적 심판대상이 되었으므로 축소사실이 인정되면 법원이 유죄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견해이고, ② 원칙적 재량설은 사실인정에 있어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 법원의 재량을 인정할 필요가 있으므로 직권에 의한 사실인정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의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로 판례와 같은 입장이다.

공소사실에 대한 축소사실은 공소사실에 포함되어 현실적 심판의 대상이 되었음이 분명하여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으므로 판례와 같이 축소사실의 사안이 중대하여 공소장변경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 것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경우가 아니어도 원칙적으로 법원은 공소사실 중에서 인정되는 축소사실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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