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0년대에 법학을 공부하면서 이항녕(李恒寧) 저 ‘법철학개론’만큼 재미있게 읽은 법학서가 없었다.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법과 정의를 논하면서 전세계 문명권을 시간과 공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스케일에 감탄하였고, 우리 동아시아는 우리에게 맞는 법이념과 법문화가 있다면서 동양철학에 입각한 법과 정의, 그리고 평화사상을 설명하는 깊이가 법학도의 지적 호기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감동이 결국 나도 후일 법철학, 법사상사라는 분야를 전공하는 법학자로 이끌어준 것 같이 생각된다.

스스로 ‘작은 언덕’으로 겸양하는 호를 쓰신 소고 선생은 1915년 충남 아산 출신으로 경복고를 거쳐 경성제대 예과에 입학하였다. 원래 문학을 전공하려다 춘원 이광수(1892~1950)의 권고에 따라 법학을 택하였다. 재학중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1941년 경남 하동군수로 임관하였다. 교복을 입고 부임한 일화를 남겼다.

해방될 때까지 일제의 관리를 지낸 것이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았다. 해방과 함께 출가하여 승려가 되려하였으나 가족을 버릴 수 없어 초등학교 교장이 되었다. 낮에는 가르치고 밤에는 참선하였다. 이때 김범부(김동리의 형)를 만나 동양철학을 배웠는데, 이것이 이항녕 법철학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동아대학교 교수가 되어 법철학을 가르치다 종전과 함께 상경하여 성균관대 교수가 되었다. 대학 앞 대포집에서 교수들과 모여 시조창을 배우며 풍류를 즐겼다. 1954년에 고려대로 전임하여 민법과 법철학을 강의하면서 유진오, 현승종, 차락훈, 이희봉 등과 안암법학의 기초를 놓았다.

1960년 제2공화국에서 잠시 문교부차관을 지내고 복교하였다. 홍익대 학장으로 옮겨 초대 총장이 되고 많은 화가와 문화인들과 교류하였다. 90세가 넘어서도 소설을 발표하고, 꼿꼿한 안진경체의 서예를 즐겼다. 2008년 9월 17일 향년 93세로 타계하였다. 저서로 법학서 외에도 ‘교육가족’ ‘청산에 살리라’ 등 소설집과 ‘객설록’ ‘낙엽의 자화상’ 등 수필집 여러 권을 내었다.

그는 종교에도 깊은 관심이 있어 유교는 물론이고 기독교, 불교, 대종교 심지어 통일교까지도 골고루 섭렵하였다. 서재에는 십자가상, 마리아상, 부처상, 단군상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2011년에 서울법대 역사관에서 ‘소고 이항녕의 법학세계’라는 유품전시회를 가졌는데, 일본 학자들이 와서 보고 이런 다종교성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하였다. 언젠가 TV에서 “나는 종교에 관한 한 다식주의자예요. 이 종교에 가도 맛있는 것이 있고 저 종교에 가도 맛있는 것이 있어요”라고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의 풍류정신은 그것을 초월하였다. 그의 친일참회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참회발언을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도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너무나 당연한 것을 갖고 그러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하셨다.

법률가로서는 민법, 농동법, 법철학, 나아가 저작권법까지 연구하고 강의하셨다. 민법을 제정할 때 그의 천재적 두뇌로 만든 법률용어도 있었는데, 청약(請約)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천재가 종사해야 할 최적의 직업은 법률직이고, 그것도 법률해석이 아니라 입법이라고 한 벤담의 말을 연상하게 된다.

작고하신 후 유족인 이재후 변호사와 이재창 교수가 이항녕기념사업회를 창립하여 매년 가을에 ‘이항녕기념강좌’를 실시해오고 있다. 2011년부터 매년 서울대, 고려대, 홍익대에서 법학의 관점에서 학자들이 연구한 논문으로 발표를 하여왔다.

금년은 지난 9월 15일 한국인물전기학회와 공동으로 ‘예술가의 집(옛 서울대 본부)’에서 ‘이항녕의 생애와 문학세계’에 대해 제4회 기념강좌를 가졌다. 홍익대 명예교수 문덕수 박사는 고인을 회상하면서 한 마디로 지정일여(知情一如)의 논리를 가진 풍류인이었다고 증언하였다. 공동연사인 나도 소고의 문학과 법철학에 영향을 미친 루소, 괴테, 라드브루흐, 춘원, 유진오를 중심으로 설명하였다.

고인의 풍류도를 그리며 명창 김월하 여사가 부른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창을 들었는데, 실은 김 여사도 부산 피난시 매일 저녁 한을 달래는 대법원 판사들의 시조창 모임에서 처음 배웠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 유족이 베푼 만찬으로 법률가들과 문학인들이 한 자리에서 즐거운 환담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내년이면 탄생 100주년이 된다. 한국법조사가 이런 멋있는 법학자, 풍류인 법률가를 가진 것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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