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차로에서 교통체증이 풀리기만 하염없이 기다려본 적이 있는지요? 정체가 왜 발생했고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상상해보십시오. 이런 상황에서도 느긋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 시간이 얼마나 참고 견디기가 어려운지요.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스트레스 정도가 얼마나 막심한지 2009년 독일의 아네테 페터스 박사팀은 심장마비 경험환자 1500여명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장마비 증상이 나타나기 1시간 이내에 교통체증이 심한 곳에 있었고 이들이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은 평균환경보다 3.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을 때는 통제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이 떨어질 때입니다. 차가 막혀 있을 때 스트레스가 큰 것은 교통 정체를 내가 어찌해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어찌해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얼마쯤 후에 정체가 풀린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그래도 참을만합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든 정체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정체가 풀릴지도 알 수 없을 때의 스트레스는 엄청나게 됩니다.

교통체증 못지않게 커다란 스트레스를 불러오는 것이 있습니다. 시험! 특히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인 시험이 끝났을 때가 그러합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시험이 끝나서 홀가분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시험 직후, 감소한 예측·통제가능성으로 인해 큰 폭으로 스트레스가 증가합니다.

매년 11월이면 우리의 아이들인 고3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봅니다. 시험을 보기 전에도 부모로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지만 시험 후에도 지속적으로 따뜻한 격려와 지지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봅시다.

“수능시험이 끝났다. 이제 와서 시험 성적에 영향을 미칠 행동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통제가능성이 ‘0’인 상황이다. 뿐더러 최상위권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점수가 전체 점수 분포에서 어디쯤에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설령 예상 점수를 안다고 해도 논술, 면접 등의 또 다른 변수가 예측가능성을 끌어내린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단순히 신체적 휴식을 취한다거나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한다거나 극복을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방법들이 효과를 발휘하기 전, 한시적인 평안함을 얻기 위한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수능이라는 커다란 시험을 보고 난 수험생들은 시험 직후 큰 시험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을 보입니다. 바로 이어서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시작한 12년간의 학교 공부가 단 하루의 평가로 마무리되었다는 허무함, 조금 더 열심히 노력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이지요. 허무함과 회한이라는 부정적 상태는 그리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이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즉각 반응이 뒤따르게 됩니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반응 중의 하나는 하향 합리화입니다. ‘나만 시험을 못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못 봤을 거야’하면서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때 부모님들은 ‘위는 보지 않고 아래만 본다’고 꾸중하기 쉽습니다. 부정이나 회피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예 시험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고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채점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주인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경이 너무나 많이 쓰이기 때문에 아닌 척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분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예측이 될 때 ‘교육제도가 잘못되었다’ 혹은 ‘부모님의 지지가 없었다’ 등 남탓을 하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본인의 노력부족이나 능력부족을 탓하는 내부 귀인을 하기도 합니다. 내부 귀인을 하는 경우에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우울 반응이 뒤따라오고 위축, 의기소침, 슬픔이 마음 속에 가득하고 무기력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또는 이번 시험은 망쳤지만 다음번 시험은 잘 볼 수 있다면서 당해 연도 입시를 지레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수험생에 따라서는 합리화, 회피, 분노, 우울, 포기 등의 반응을 다 함께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반응을 2주 이상 보이면 부모님들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야 하지만 시험이 끝난 직후에 단기적으로 보인다면 그냥 보듬어 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뎌내려는 단기 적응행동이라고 너그럽게 수용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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