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종교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벌어진 그 많은 갈등과 고난의 역사가 곧 세계사의 큰 준령일 것이다. 종족 차이는 차별로, 신의 경배는 아집으로, 순혈주의는 독선으로 점철됐다. 결국 소통부재의 끝판은 전쟁으로 귀결됐다.

이 모든 잘못의 중심에 인간이 있으며 결자해지하는 이도 바로 인간이었다. 생각의 오류가 지구촌을 일방통행으로 몰아갈 때, 저 참호 속에 피는 야생화의 숨결처럼 이웃과 소통하려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다. 그들은 알았다. 타인과 나와의 간격을 극복하는 방법이 ‘교류와 존중’이라는 사실 말이다.

경쟁과 우정을 테마로 지구촌에 행해지는 스포츠 대전은 우리에게 같이 꿈꾸는 세상을 알리는 신호체계이다. 아시아인의 축제가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인천에서 열렸다. 아마추어리즘은 순수와 열정과 환희로 압축된다. 한 마디로 고진감래의 진수이다.

남자 카약 조광희가 1인승 200m 결선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카누 역사상 24년 만에 나온 금맥이었다. 카누의 불모지인 열악한 국내 사정을 감안할 때 그들의 노력은 고통 속에 핀 결실이었다. 이제 2016년 리우올림픽의 전략종목으로 키우자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한풀이를 단단히 한 격이다.

남자 테니스 복식조 임용규와 정현도 2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투혼이 승부의 정점을 이뤘다.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으로 홀어머니 슬하에서 꿈을 키운 17세 소년 김청용의 남자 사격 2관왕은 반란 아닌 반란이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쳤으니.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선수들의 진가가 발휘된 대회였다.

헌데 호사다마일까?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의 7년 준비결과는 결코 매끄럽지 못했다. 경기장에 물이 새고, 정전이 되고, 발권기가 고장 나고, 식중독이 발생하고, 더군다나 스포츠 축제에 마지막 성화 점화 주자마저 한류로 채워졌다.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세계 12위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다. 역사의식과 세심한 배려가 아쉬운 대회였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