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는 설날과 함께 우리나라의 명절을 대표하는 날로서, 한해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을 수확하여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조상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라 하겠다. 이 날의 차례상에는 하늘의 달을 상징하는 송편과 지상의 열매인 과일, 지하의 열매인 토란이 기본으로 올려지고, 조상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리고 절을 올리게 된다.

대개 명절을 전후로 주부들의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이 부쩍 많아진다. 불안 및 우울증, 불면증,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즐거운 명절임에도 이들에게는 명절이 별로 즐겁지 않은 것이다.

연아 엄마는 요새 계속 가슴이 벌렁거리며 불안하고 밤에 잠도 잘 안 온다. 자꾸 노처녀 시누이의 성난 얼굴이 눈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추석에 남편 고향에 내려갔다가 대판 싸운 일이 있었다. 고스톱을 친 게 화근이었다. 돈 잃은 시누이가 내가 쓰리고를 부르자 결국 그놈의 성질을 터뜨리고 말았고, 나는 ‘고모, 왜 이래?’ 하고 대든 것이었다. 말리는 시누이가 아니라 말리는 시애미가 더 미웠다. 하도 서러워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뒷자리 애들이 자다 깰까봐 소리 죽여 가며 울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튜어디스 출신인 아래 동서를 생각하면 부끄러워 죽겠다. 나이가 들었어도 어쩌면 그렇게 옷맵시가 나고 날씬한지…. 인치수가 늘어만 가는 내 바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부엌데기 일은 내가 거의 다 하는데 동서는 입으로만 일한다. 그래서 생색은 저 혼자 다 내고 시아버지 칭찬은 걔 몫이다. 얄미움의 극치다.

현진이 엄마는 요새 머리가 너무 아프고 기운도 없고 밥맛도 없고 변비로 고생이다. 맏며느리로서 제사를 준비하는 일이 너무 버겁다. 육남매 중 맏아들 집으로 시집오는 걸 각오는 했었지만, 그 많은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것이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준비할 음식 목록도 빽빽히 적어야 되고, 시부모님뿐만이 아니라 여러 어르신들 선물 준비도 골치 아프다. 무엇보다도 항상 마음에 걸리는 건 조상들께 또 그 많은 절을 한다는 것이다. 내 종교하고는 거리가 먼 일이다.

연아 엄마와 현진이 엄마의 예를 보면 명절은 즐거운 날이 아니라 스트레스만 주는 날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많은 주부들은 위와 같은 일을 최소한 한가지는 겪으며 산다. 그런데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하는가? 다들 한가위의 의미를 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미국에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있다. 그 말에서 보듯이 한해의 음식을 장만하게 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한가위나 추수감사절이나 과거 농경 사회에서 비롯된 전통이라 할 수 있다. 1년에 한번 있는 큰 수확은 정말 뜻 깊고 기쁜 날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고 조상과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지극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도시 사회는 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현대 사회는 어떤가? 1년 중에도 여러번 수확을 할 것이다. 그 수확은 단지 곡식과 과일에 국한된 먹을 것이 아닌 다른 무형의 수확도 포함이 된다. 너무 많은 수확을 하다보니 그 감사하는 마음도 잊은 채 지내고, 또 누구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 지도 모르고 지내는 것이다. 이런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니 명절을 단지 의무감으로만 느끼게 되고 형식에 치우치게 된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자기 감정과 욕심에만 치우치다 보니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사고의 전환이다. 어떠한 일의 부담감을 떨쳐버리려면 긍정적으로 이를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목표가 뚜렷하면 스트레스는 덜해진다. 그렇게 되면 능동적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사상에 송편과 햇과일에 토란국만 있으면 어떻겠는가? 그 안에 들어있는 정성스러운 감사의 마음만 들어있으면 된다. 누가 옆에서 음식이 그게 뭐냐 해도 상관할 바가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날이 패션쇼장은 아닐 것이다. 절을 하면서 속으로는 조상신이 아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될 것이다.

시누이와 시어머니는 멀리서 와서 수고하는 올케와 며느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회사 사장은 그동안 수고한 직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편은 힘든 일을 해내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1년에 한번 있는 이날만이라도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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