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마지막 날, 중국 중앙TV(China Central Television)와 2015년 신년인사 녹화를 하였다. 북경에서 열린 ‘2014년 한국영화제’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국영화산업에 대하여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사전 요청이 왔기에 간략하게 현황을 설명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프로듀서가 대뜸 ‘귀한 분이 오셨는데’ 중국 인민에게 신년인사를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를 통해서 이웃이 되자’로 시작해서 몇 문장을 중얼댔다. 동행하였던 영화진흥위원회 국제팀장은 ‘임기 끝난 양반 잡고 신년인사까지 딴다’고 키득키득 웃었다.

북경 한국영화제에 한국대표단을 인솔하였다. 영화제 기간 중에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임기가 끝났으니 짠한 마지막 출장이었다. 십수년 만에 찾은 북경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건물은 세련된 디자인을 입었고, 번화가는 시카고보다 더욱 시카고였다. 개막식이 열린 ‘CGV 인디고점’은 첨단 쇼핑몰 중앙을 차지한 극도로 안락하고 풍요로운 공간이었다. 중국 TV는 한국 드라마를 방송하지만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중국정부가 극장용 영화의 수입편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대우인 할리우드 영화는 연 30편 정도 개봉되나, 미국 이외 모든 국가가 나머지 30편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따낼 수 있는 쿼터는 많아야 연 4편 정도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에 대한 대접이 시원찮다고 속단하면 오해이다. 대한민국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에게 국영방송이 철 이른 신년인사까지 부탁하는 점이 증거가 된다.

▲ '한국영화제'에 참석한 필자(좌측 끝)
중국 정부의 목표는 한국 영화시장의 성과에 맞추어져 있다. 영상정책의 총수인 광전총국장은 점심식사 자리에서 5년 내 중국 인민이 연 4회 극장 방문을 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고 했다. 연 4회라면 2012년, 2013년의 우리나라 통계를 의미한다. 2013년 우리 국민 한 사람은 평균 극장 문턱을 4.25회 넘어 세계 1위 기록을 세웠다. 중국 인구를 기준으로 연 4회를 달성한다면 외형상 산업규모가 할리우드를 제치게 된다. 내용을 충실히 하는 것은 다음 문제라고 하였다. 최근 중국의 7개 정부 부처가 ‘대세는 영화’라고 결의하였다는 소식도 전했다. 제조업이 살 길이었던 시절 행세하는 나라들이 산업 유발 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에 몰두했듯이, 이제는 방향을 틀어 영화의 ‘윈도 효과’에 주목한다는 뜻이다. 공항 시간이 촉박하여 점심을 서둘러 끝내며, 영화진흥위원회 중국사무소장에게 “같이 갑시다”를 통역하라고 하였다. 두 나라 영화인들이 영화 시장을 함께 키우자는 뜻이었다. 참석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2013년 한·중 양국은 ‘영화 공동제작 협정’을 체결하였다. 십수년 전부터는 서로 상대 국가에서 영화제를 열고 있다. 북경과 상해에서 열리는 한국영화제는 중국의 한국 영화애호가에게 큰 화면으로 우리 영화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함께 간 한국감독들은 중국 기자들의 질문이 진지하고 날카롭더라고 하였다. 촬영현장에서 ‘액션’을 외치던 그 순간의 연출의도까지 정확히 잡아 낸 질문에 가슴이 뭉클하더란다. 중국의 영화산업 발전 속도는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현재 2만2000개 정도의 스크린이 있지만 정확한 통계는 불가능하다. 매일 7개 전후의 스크린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약 2200개 스크린 수에서 정점을 찍고 현상유지를 하는데 비하여 중국의 발전가능성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국영방송이 나를 잡고 중국 인민에게 신년인사까지 시킨 것은 명백히 헛발질이다. 영진위를 정부조직으로, 끈 떨어진 부위원장을 ‘넘버 1’이 보장된 ‘넘버 2’로 믿었으니 그랬을 게다. 북경을 오래 지키고 있는 영진위 북경사무소장은 광전총국 직원들과 오래 사귀어 업무협조가 매끄럽다고 했다. 광전총국 내에서, 사무관이 서기관이 되고, 과장이 되고, 국장이 되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영상전문가로 발전하고 있으니 ‘업무 상대’로 그만이라는 뜻이다. 문체부 영상과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행정실로, 국립국악원으로, 광주 아시아문화의 전당으로, 그리고 태릉선수촌으로까지 종횡무진 짐 쌌다가 풀기를 반복하는 우리 공무원 제도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중국식 인사제도가 문명국가 대부분의 국가운영 방식이기도 하다.

억지로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야릇한 우리 공무원 인사제도는 언제나 수술이 될 것인가? 어울리지 않는 신년인사를 하며 TV 카메라 앞에서 잠시 머리를 스친 상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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