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의 유무죄 판단 기준 혹은 사실인정 원칙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 (Proof Beyond Reasonable Doubt·PBRD)’이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합리적 의심을 관념적이거나 추상적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이 아닌,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심’으로 정의하였다. 따라서, 검사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없을 때만 유죄를 판단할 수 있다.

PBRD 기준은 모든 법적 판단기준들 중에 가장 엄격한 기준이고, 무죄추정의 원칙과 적법절차 원칙을 개별사건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형사사법의 핵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그 의미와 실천방법에 대해서 섬세한 고찰과 논의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법대와 로스쿨, 그리고 사법연수원에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유무죄 판단을 법관의 자유로운 심증형성에 위임하는 전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PBRD 기준의 이해와 설명이 모호하고 어려운 탓이기도 하다. PBRD 기준은 그 의미를 설명할수록 이해가 더 어려워지는 특성이 있다. 유무죄 판단 기준이 그렇게 모호하고, 설명과 이해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PBRD 기준의 역사적 기원에 있다는 흥미로운 관점이 있다. 예일대학교 로스쿨의 제임스 휘트만 교수(2008)에 의하면, PBRD 기준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적법절차 원칙과 원래 무관한 기준이고, 판사와 배심원을 종교적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18세기 영국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중세기독교 신학에서는 남을 단죄하는 것이 자신의 영혼을 저당잡히는 위험천만한 일로 여겨졌다고 한다. 특히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판단하는 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사후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확실한 보증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영혼을 거는 도박이었다. 그러한 두려움에 의해 판사와 배심원들이 유죄판단을 주저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유죄가 100% 확실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한‘합리적 의심’이 없다면 두려움 없이 유죄를 판단하라”는 의미의 종교적, 신학적면죄부를 준 것이 PBRD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세 법정에 그 기준을 도입한 것은 판사가 아니고 검사였다. 휘트만 교수의 견해는 원래 제2종 오류(유죄를 무죄로 판단하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기준을 현대에서 제1종 오류(무죄를 유죄로 판단하는 오류)를 거꾸로 해석, 사용하기 때문에 설명과 이해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마도 중세의 목적과 의미가 현대에서 전도된 것은 그간 남을 단죄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두려움, 종교적 경외심, 실존적 긴장감이 지나치게 없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해부터 국민참여재판의 판사는 배심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즉, 배심원들의 유무죄 판단에 대해 사실적(de facto) 기속력이 부여되었다. 그것은 배심원들이 PBRD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고 올바르게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또한 판사가 그 기준의 의미를 배심원들에게 정확히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그 기준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해졌다.

필자의 척박한 연구경험에 의하면, PBRD 기준을 이해하는 것과 유무죄 판단에 실제 사용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배심원들의 유무죄 판단 기준은 PBRD 개념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범죄에 대한 경각심, 법의 기능 (법의존재 이유)에 대한 인식 등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더라도 판단기준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배심원의 필수요건이고, 그 요건을 충족하는 책임은 판사에게 있다.

미국에서 오랜 기간 이루어진 열띤 논의에 의하면, PBRD는 두 가지 차원을 가지는 기준으로 보인다. 하나는 증명의 정도이고, 다른 하나는 심증의 질이다. 증명의 정도는 피고인의 유죄에 대한 검사의 증명이 객관적으로 ‘완벽’과 ‘반반’ 사이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대한 판단자의 판단이다. 심증의 질은 마음에 형성되는 유죄심증의 내용 (질)에 대한 판단자 자신의 주관적 판단이다. 미국에서는 유죄판단을 위해 요구되는 심증의 질이 ‘확고한 납득(firmly convinced)’이라는 것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필자는 PBRD 기준의 그러한 의미를 대한민국의 배심원들이 쉽고 정확히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요지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쉬운 칼럼으로 써낼 수 있는지를 오래 고민하다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였다. 법정에서 PBRD 기준을 배심원들에게 필자의 칼럼처럼 재미없고 어렵게 설명하면 안 될 것이다.좋은 칼럼 쓰기는 포기할 수 있는 일이지만, 형사재판에서 정확한 판단은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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