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희씨는 이쁘게 늙은 배우이다. 절정기에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을 하여 파리로 떠났고,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詩)로 다시 관객을 만났다.

윤씨는 1977년 이응로 화백의 부인이 주선한 연주회에 초대받아 공산국가 유고에 갔다가 북한의 납치 기도를 겪은 후 낯선 사람을 두려워한다. 모임이 끝나면 택시를 부르기보다 누가 여의도의 집으로 데려다주기를 원하는 눈치다. 그날은 여의도를 들러 학교로 가겠다고 내가 기사를 자청하였다. 프랑스 봉쇄수도원에 머물렀던 동생 관련 명예훼손 사건을 꺼내자 가족사가 줄줄 나왔다. 윤씨의 막내 동생은 소르본 대학교 심리학과, 파리 카톨릭대학교 신학과에서 공부하다가 수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 여성잡지가 그 막내 동생이 윤씨의 혼전 자식이라는 식의 ‘소설’을 써서 손해배상이 인정된 사건이다(서울고등법원 1997. 2. 26. 선고 97나12420 판결). 성형수술로 얼굴을 축내는 다른 배우들과 비교되는 그의 기품이 성장과정에서 자연히 묻어나온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 되는 날 해질 무렵, 제주항에서 백건우는 피아노를 쳤다. 부둣가 무대 위의 그랜드 피아노, 텅 빈 바다를 배경으로 뉘엿한 햇살이 피아노에 반사되었다. 바다는 은비늘을 가득 튕겼다. 큰 키의 백씨가 성큼성큼 피아노로 다가왔다. 추모 음악회니만큼 박수도 촬영도 자제해야 했다. 제주방송(JIBS)이 준비한 행사라 신영균씨를 중심으로, 안성기, 박상원이 앞자리에 앉았고, 우연히 제주도에 있었다는 박찬호도 달려왔다. 시작한다는 안내도 끝났다는 안내도 없었다. 7시 30분에 백씨가 나타나서 시작이었고 그가 떠나서 끝이었다. 800명 관객은 한 마음으로 그렇게 이해하였다.

바다내음은 은은했고 파도소리는 싱그러웠으며 저녁노을은 처연하였다. 백건우는 폭풍처럼 몰아치다가 탈진한 듯 옅은 호흡으로 이어갔다. 팜플렛의 ‘인사말씀’에서, 희생된 분들의 영혼을, 자식 잃은 부모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서 ‘오직 음악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인 음악으로’ 마음을 전하겠다고 했다. 그것만이 안타까운 영혼들께 바치는 진정한 송가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파리에서 백씨가 박탈감으로 무척 힘들어 하더라고 윤씨는 전했다. 무엇인가 해야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할지 안절부절 못할 때 제주방송으로부터 추모음악회 제의를 받았더란다. 선곡(選曲)에는 얼마나 고민을 하던지 40년을 같이 살면서 이렇게 골똘한 적은 없더라고 했다. 주최측은, 백씨 부부가 출연료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파리-서울 왕복항공료까지 스스로 부담했다고 귀속말을 했다. 제주항과 제주공항이 지척이라 피아노 뒤로 비행기가 뜨고 내렸고 여객선이며 화물선이 오갔으나 성가시지 않았다. 졸지에 떠난 이들이 도착했어야 할 항구에서 열린 추모음악회라면 오히려 일상의 분주함이 당연하다 싶었다.

TV를 켜놓고 소파에 누워 신문을 읽다가 세월호 현장의 앵커 목소리에 눈물이 솟구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던 날이 있다. 엉거주춤 일어나, 코피가 터진 양 소파 등판 뒤로 목을 젖혀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24시간 보도 되는 아이들의 스마트폰 영상에 눈물 쏟지 않은 국민이 어디 있을까? 미안해 하지 않은 국민이 누구였을까? 그렇다고 정당이며 사회단체가 경쟁적으로 현수막을 걸 일이었는지, 서울시청에까지 합동분향소가 필요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안타깝지만, 사고는 일어난다. 2005년 태풍 카트리나는 1800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뉴올리언스 시민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었고, 지난 달 말레이시아 항공의 피격사고로 네덜란드인이 무더기로 변을 당했다. 사고를 계기로 문제가 있는 시스템을 정비하고, 필요하다면 수사를 통하여 책임자를 처벌할 일이다. 그때마다 장관 멱살을 잡고, 청와대로 가겠다고 도로로 뛰어들고, 특검을 외치고, 특별법을 만들 일은 아니다. 백씨의 추모음악회가 우리사회가 슬픔을 극복하는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슬픔을 내면화할 줄 아는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라고 믿는다.

다음 날 신영균영화박물관 재개관식에서 백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두 손을 꽉 잡고 찡긋 눈웃음을 지었다. 부부 모두 본받고 싶은 인생 선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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