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우리는 그 물건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따진다. 어떤 물건이든 그것의 본래 목적인 사용가치가 먼저 고려되기 마련이지만, 현재 우리에게는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가 더 우선시되는 물건이 하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사용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높은 교환가치를 가지는 것만큼, 그것은 우리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며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다. 그것은 바로 ‘집’이다.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인 의, 식, 주 중 ‘주’는 우리사회에서 유일하게 미래의 교환가치가 더 중요시되는 항목이다. 그래서일까. 개개인의 특성과 생활방식에 맞춘 개별적이고 다양한 주거보다, 어느 누가 사용해도 큰 불편함이 없는 틀에 짜인 평면과 공간구성을 갖춘 판상형의 주거가 도시를 뒤덮어버린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까닭 말이다. 하지만 초점을 다시 맞추어보자. 문제는 이 ‘판상형’이라는 형태가 아니다. 네모난 창문이 일렬로 빼곡하게 박혀있는, 회색빛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건물이 상징하는 것은 교환가치를 통한 이익에 삶을 기대는 우리의 욕망이다.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며 이러한 판상형 건축을 탄생시킨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를 책망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미노 시스템’을 정립하며 소위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르 꼬르뷔지에의 활동 무대가 된 시기는 20세기 초다. 이 시기 발생한 산업화와 기계화는 물질적인 환경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내면에도 큰 영향을 미쳐 예술, 문학, 의학, 과학 등 각 분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에서 건축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건축에게 ‘대량생산’을 요구했다. 건축은 19세기에는 산업혁명의 산물인 철을 그것의 재료로 사용하고,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도입함으로써 사회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이로써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근대건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근대건축에 대한 르 꼬르뷔지에의 이념과 원칙 역시 이러한 변화의 산물이었다.

꼬르뷔지에가 건축사무소를 연 것은 1922년의 일이다. 개소와 함께 그는 ‘현대건축의 5원칙’을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주택들을 설계했다. 그가 보기에 그 당시 시대의 발전에 부합하는 건축은 1. 필로티를 이용해 대지를 활용해야 하고, 2. 자유로운 평면과 3. 자유로운 입면 그리고 4. 가로로 긴 창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5. 옥상정원을 갖추어야 했다. 근대 건축이 탄생한 때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건물을 벽돌과 돌을 쌓아 만들었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가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비슷한 시기, 꼬르뷔지에는 당시 산업화로 자꾸 늘어만 가는 도시 빈민을 염두에 둔 현대도시 계획안을 내놓는다. ‘300만 거주자를 위한 현대 도시’ 개념을 파리라는 실제 도시에 적용한‘부아쟁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는 프랑스 임시정부의 의뢰를 받아들여 도시 재건을 목적으로 한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설계하기도 했다. 1600명이 거주할 수 있고 쇼핑가와 편의시설, 옥상에는 유치원과 체육시설까지 갖춘 이 주거시설은 현대 아파트의 효시가 되는 건축물이다. 근대건축을 향한 르 꼬르뷔지에의 생각과 활동은 건물을 설계하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고층 공동 주택을 설계하면서 인간의 신체 척도와 비율을 기초로 황금분할을 찾아냈고, 그것을 건축적으로 수치화한 표준 ‘모듈러 이론’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이 척도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더욱 효율적인 공간에서 살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아파트와 같은 판상형 건축물이 많은 이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됨으로써, 르 꼬르뷔지에를 위시한 모더니즘 건축과 건축가들은 기계적이고, 인간미 없는 건축을 만들어낸 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파트는 잘못된 건축의 한 형태이고, 그것의 효시는 모더니즘 건축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르 꼬르뷔지에는 집을 기계로 보는 미치광이일 뿐이다. 하지만 건축의 형태에 앞서 우리는 꼬르뷔지에가 무엇을 이유로 그러한 건축의 개념과 방식을 제안했는지를 짚어보아야 한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그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건축을 했다. 그에게 ‘주택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였지만, 그에게 있어 ‘기계’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도구와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토양에 마구잡이로 불러들인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에는 그가 애초에 생각한 ‘사람을 위한 건축’이 빠져있다. 이념이 배제된 건축의 껍데기만을 이 땅에 심어놓은 채, 그것의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만을 앞세워 각자의 욕망을 채우려한다. 우리의 부정적 시선이 닿아야 할 곳은, 눈앞에 보이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그것이 대변하는 우리사회의 헛된 욕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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