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찜아빠, 녹색아빠.

우리 집에는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에 각각 재학 중인 아들 둘과 나, 아내가 살고 있다.

현재 우리 집에서 나의 역할은, 평일 아침 식사를 챙기는 것과 2일의 주말 중 하루는 제반 집안 일을 책임지는 것이다. 부부간 개인적 장·단점 및 직업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러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물론, 과음으로 인하여 내가 늦잠을 잔다거나 아내가 저녁 약속이 있게 된다거나 하는 등의 예외적 상황에는 그에 맞게 조정이 이루어진다).

평일 아침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함께 집을 나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아침에는 아이들이 선호하면서도, 조리하고 뒷 정리하는 데 시간이 들지 않는 반찬을 낼 수밖에 없는데, 그 중 하나가 뚝배기 계란찜이다. 1년에 최소 200일 이상은 계란찜을 준비해 냈으니 지금까지 내가 밥상에 차려 낸 계란찜이 1000개는 족히 넘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는 사람들은 나를 계란찜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형과 공평한 대우를 해달라는 둘째 아이의 요구에 따라 학급 일에도 관여를 하게 되었는데, 내 처지에서는 학생들 등하교 지도를 하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창피함을 무릅쓰고 다른 엄마들과 함께 교통지도에 참여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아빠의 참여 때문인지는 몰라도 ‘녹색어머니회’라는 조직의 공식 명칭이 이 학교에서는 ‘녹색학부모회’로 바뀌게 되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인가

처음부터 내가 이렇게 살 거라고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처음부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이루어야겠다는 의식 하에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남편인 내가 일을 열심히 하면 가정은 아내가 열심히 꾸려갈 거라 생각했다(아내의 직장이 급여가 적은 대신 정시 퇴근이 가능한 직장이라는 점은, 그래서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첫 아이를 낳고 키울 때까지는 여느 가정의 남편과 다름없이 저녁이 없는 삶을 영위하던 나는 둘째 아이의 출산을 계기로 가정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갓 태어난 둘째를 돌봐야하는 아내에게 첫째 아이가 자꾸 보채는 모습을 지켜보니, 아내가 여자로 태어난 게 무슨 죄인가 싶어서 첫째 아이를 내가 돌봄으로써 아내의 짐을 덜어주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 최초의 계기였다.

소중한 공동육아의 경험

첫째 아이가 30개월을 넘기면서 어린이집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아내가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보내기를 강력히 희망하여 마포 성미산 마을에 자리잡은 공동육아어린이집에 첫째 아이를 등원시키게 되었다.

아빠의 적극적 참여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공동육아’의 정신이 제대로 구현되기 어려웠으므로 나도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쪼개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여러 가정의 부모 및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다보니 아빠가 가사 및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정의 엄마가 웃는 일이 많다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엄마가 많이 웃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일 확률이 높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견이 없으리라!).

장시간 근로를 요구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아빠가 가사와 육아에 참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빠가 나름의 의지와 노력에 의하여 참여하는 만큼 가족 구성원들이 행복해 하는 풍경들을 목격한 이후로는 내 인생관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또한 나 스스로도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행복해 할수록 나의 행복도 함께 늘어나는 소중한 경험을 맛보게 되면서 나는 점차 일 중독자에서 가정 중독자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평생 정시 퇴근이 가능한 직장에 다니며 일의 양을 조절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아내에게 뜻하지 않게 대학원 진학의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이로써 아내는 직장 생활과 대학원 과정을 병행하면서 가사, 육아까지 해야만 하는 삼중고에 처하게 되었다. 어떤 날은 밤까지 새워가며 수업 준비를 하는 아내에게, 나는 더 이상 내가 더 바쁘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와 같은 부부간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만약 결혼 전부터 이러한 내용의 역할 분담이 논의되었다면 나는 결혼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몇년에 걸쳐 부부간 협업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이루어져 왔고, 내 몸뚱아리가 거기에 적응해 왔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역할 분담 구조가 정착되는 것이 가능했던 것 아닌가 생각된다(물론 그 과정에서 다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2012년 10월 중순경부터 한달여 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특검에 들어가 한달 중 딱 하루만 빼고는 매일 정시에 출근하여 야근으로 이어지는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에도 아침 식사만큼은 내가 챙겼을 정도니, 현재 우리 부부의 협업 구조는 이제 정착됐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대화가 끊이지 않는 우리 집

여느 맞벌이 가족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도 4인 구성원 모두가 함께 있는 시간은 별로 많지 않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간에 아내가 늦잠으로 출근이 늦는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나와 아내 둘 중 하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정 내에서의 업무에 관한 한 엄마 아빠 구별 없는 삶을 어린 시절부터 쭉 경험해왔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고 재잘거린다.

더욱이 우리 집에는 TV가 없기 때문에 가족들끼리 모여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대화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의 성격이나 현재 하고 있는 고민 등을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될수록 더욱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아이들의 가장 큰 소원은 4인 가족이 함께 배드민턴 경기를 복식으로 하는 것인데, 이런 소박한 소원마저 매주 들어주기 쉽지 않다.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은 아닌가

모든 사물의 이치가 그러하듯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 가정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일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래도 어학이나 전문분야 개척 등의 자기계발은 후순위로 밀리게 되어 있고, 조직에의 충성도에서도 남보다 뒤처지게 되어 있다. 나 역시 경쟁에서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 왔다. 개별 가정의 구체적 사정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노력을 좀 더 하라고 다그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맞벌이 부부에만 국한하여 본다면, 가정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함으로써 얻는 장점이 만만치 않다는 점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 등 몸과 마음이 힘들 때면 집에 일찍 들어간다. 가족 구성원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웃음소리는 지친 나에게 큰 위안을 주고 활력을 되찾게 해준다. 이렇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빨리 되찾아 다시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내 경쟁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생 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대에는 일상적 자가 회복과 그로 인한 일상적 평정력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소망한다. 경청의 시간이 확대되기를

훌륭한 변론이 의뢰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서 시작되고, 훌륭한 재판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서 시작되듯이, 훌륭한 가정 생활도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이루어지는 양상은 각 개별 가정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각 가정에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서로 경청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는 많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쪼록 행복한 가정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의 변화와 함께, 경청의 시간이 확대되는 방향의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나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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