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을 가는 것과 법대를 가는 것, 어느 것이 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둘을 비교하는 이유는 수험생들이 선호하는 문과와 이과의 대표적인 과이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이 좋은 이유는 중간만 해도, 아니 지독하게 공부를 멀리하지만 않는다면 대부분은 의사가 된다는 것이고 의사만 되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안정은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쁜 점은 공부 기간이 아주 길고 뭔가 잘 하려면 꼭 외국 연수를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다.

법대의 장점은 법조인이 되는 기간이 의대보다 짧고-경우에 따라서는 길 수도 있지만-굳이 외국 연수를 안 가도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점이라면 모든 법대 입학생이 법조인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소수만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라고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의사로서 생각해 보았었다.

사회에 나와 보니 의대는 의사가 안 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반해 법대 졸업생은 굳이 법조인이 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법조인들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있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의사들은 그럴 힘이 없다. 그저 우리 사회가, 정부가 정해준 룰에 따를 뿐이다. 의료수가라는 것이 원가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도 속수무책이다. 원가에 못 미치는데도 정부는 당당하니 환장할 일이다. 의사들의 진료 행위를 평가하는 심사평가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잘못 항의했다가는 아니 질문만 삐딱하게 해도 곤혹을 치를 수 있다. 정부가 얼마나 의사를 우습게 알면 심사평가원장에 아예 의사 출신은 배제한다.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나. 건강보험공단은 환자들에게 의사들이 사기 칠 수 있으니 꼭 진료 내역을 확인하고 의심되면 신고하라고 방송까지 한다. 잘하면 상품도 준단다. 그래도 의사들은 항의조차 못한다. 리베이트 쌍벌죄라는 법과 아청법이라고 하는 법에 이르면 그야말로 우리 사회가 의사들을 준 범죄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독히 의사들에게 부정적이다.

법조인들도 법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도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되기 일수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한 나라의 의료를 책임지는 복지부 장관에 의사출신이 해본지는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오래 전에 잠깐 있던 일이다. 법무부 장관에 법조인이 아닌 분이 될 가능성이 있을까?

이 와중에 의료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실제로 의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경영상의 문제로 폐업하고 있다.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 그 어떤 직종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의사들의 자존감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의사회의 회장 선거에 출마를 했었다. 의사들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의료 환경은 갈수록 왜곡되어 가고 있는 이 와중에 말이다.

현직 교수 출신으로 협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경우는 아주 이례적이다. 그래서인지 교수가 뭣 하러 협회장 선거에 출마하느냐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출마한 이유는 의사회가 바닥을 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협회가 갈수록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장이 목에 칼을 긋고 상임이사가 민주노총 집회장에 가서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의료의 근간을 흔들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이슈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정부가 더 이상 의료인들의 분노를 방치하다가는 이 나라 의료는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에 출마를 했었는데 낙선했다.

교수를 반기지 않는 개원의들을 충분히 이해시키기에는 준비 기간이 짧았고 선거 기간 내내 지속된 상대 후보의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선거 운동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게다가 나름 전국조직을 갖고 있는 후보자를 상대로 무척이나 낮은 투표율 하에 승리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 같다.

낙선자가 말이 많으면 볼썽사납다. 가급적 말을 아끼는 것이 상책이고 미덕으로 보인다.

이제 다시 대학 교수로 돌아오고 보니 세상 편하기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쉬움은 남지만 익숙한 것이 편하다던가. 선거 운동 기간이라 면책이 되었던 야간 자율학습 끝나고 밤 11시에 학교서 돌아오는 고 3 딸아이를 데리러 가는 임무가 당장 떨어졌다. 의사회도 우리 사회 곳곳이 그렇듯이 혼란스러운 시기다. 우리 사회의 각별한 관심과 이해가 있지 않고는 의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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