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젊은 법률가, 젊은 변호사, 혹은 신진 변호사라는 명칭이 법조계에도 공공연히 존재하는지? 다소 어색하고 낯설게 여겨질 이 용어는 건축계에서는 ‘젊은 건축가(그리고 신진 건축사)’라는 공식적인 명칭으로 통용된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인 건축가(사) 앞에 굳이 ‘젊은/신진’이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한국건축계가 스스로를 세대 구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또 이러한 구분법은 언제, 어떤 경위로 생겨나게 된 걸까?

‘젊은 건축가’의 탄생은 세계 경제체제의 변화와 그에 뒤따르는 한국경제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변화는 1970년대 환율 전쟁과 오일 쇼크로 인해 싹튼 신자유주의 체제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한국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각종 보호무역 조치 해제, 금융시장 개방, 관세 장벽 철폐 등 한국은 국제 자본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발생한 여러 가지 위험 요소는 한국경제를 서서히 잠식시키고 있었지만, 이것이 거대한 위기로 표출된 것은 한 순간이었다. 1997년, 한국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IMF 외환위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1997년의 위기가 한국경제의 성장을 곧바로 차단해버린 사건은 아니었다. 고비를 넘긴 뒤에도 경제 성장 그래프는 꾸준히 상향곡선을 그렸으니 말이다.

진정한 위기가 감지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여파로 불어 닥친 세계 금융위기는 전 세계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위험성의 자각과 회의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후 한국 역시 가까운 나라 일본이 먼저 경험한 경제 장기 저성장 추세를 뒤따르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경제 상황변화와 한국사회의 세대구분이 그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이다. ‘신세대’로 시작해 Y세대, N세대, Z세대, 그리고 최근의 88만원세대, 잉여세대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를 구분하는 시기는 한국 경제가 변화를 일으킨 시점과 거의 동일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이 사회에 속한 한국 건축계의 ‘젊은 건축가’ 역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먼저 건축가와 건축사 앞에 ‘젊은’ ‘신진’ ‘공공’ 같은 수식어가 공공연히 붙기 시작한 시점, 그리고 그들을 범주화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젊은 건축가상’은 2008년부터 ‘국내외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만 45세 이하 건축가’를 대상으로, 국토교통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은 2013년부터 ‘만45세 이하의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자로서 본인 단독설계 완공작품이 1개 이상인 건축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부터 시행된 ‘서울시 공공건축가’ 역시 중견건축가와는 별도로 ‘신진건축가’를 위촉하고 있는데, 그 기준도 만45세 이하이다. 2008년 이후 이들 건축상이 생겨나고 동시에 45세를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45세는 ‘젊다’라는 수식어를 어색하지 않게 붙일 수 있는 연령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계가 만들어낸 이 45세라는 기준은 한국 건축이 갖는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공교롭게도 19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에게 10년 가까이 건축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들 중 다수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건축 대학원인 M. Arch과정을 밟았고 일부는 유럽으로 가기도 했다. 유학을 떠난 이들은 대개 2~3년의 학업을 마친 이후 몇 년 간 실무경험을 쌓는데, 이는 유학길에 오른 건축전공자들이 거치는 거의 동일한 코스다. 그 시기, 건축가가 되고자하는 많은 학생들이 이와 같은 방법을 택했고, 한국경제가 뚜렷한 저성장세를 보이기 전인 200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현상은 정점을 달렸다. ‘젊은 건축가’는 바로 이 집단의 선봉에 서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이후 몇 년간의 외국 생활을 거쳐 귀국한 뒤, 얼마 되지 않은 한국에서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소위 ‘건축판’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스무 살에 대학에 입학해 4년간의 학업, 유학과 실무 기간, 추가로 군복무 기간까지 거친다면 마흔을 훌쩍 넘기는 나이가 되어서야 건축판에 조금씩 자신의 이름을 내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없이 국내에 머물러 최단기간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한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경제 고도성장기와는 달리 건축물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물에 대한 적은 수요는 곧 건축가에 대한 적은 수요로 이어지고, 신생건축가에게 돌아갈 몫은 그보다 훨씬 더 적어진다.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젊은’이들이 더디게 성장하는 이유다. ‘젊은 건축가’라는 명칭 부여는 이러한 상황에서 다가올 미래를 우려한 건축계의 궁여지책일지도 모른다. 상을 수여하고, 직책을 부여함으로써 기성건축가들에게만 집중되어 버릴지 모르는 수요를 어느 정도 배분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젊은 건축가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공공영역의 확대와 건축문화의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비단 건축계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를 경제 저성장의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 적은 몫이나마 나누는 것은 한국사회의 모든 분야에 요구되는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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