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반영에 매혹되어 눈을 떼지 못하다가 그 연못가에서 꽃이 되었다는 나르시수스의 이야기가 있다. 지나친 자기애,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자기중심적 숭배, 거만한 자긍심과 과도한 자기확신감 등이 주특징인 성격특성을 프로이드는 나르시시즘으로 지칭하였다.

심리학에서는 건강하지 못한 성격특징을 표현하는 용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매력, 개성, 권리 등에 대한 나르시시즘을 다소간 가지고 살아간다. 현대인의 나르시시즘이 만끽되는 환경 중의 하나가 인터넷, 특히 소셜네트워크(SNS)다. SNS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배경, 생각,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의 아름다움, 특징, 장점, 혹은 바람직성이 표현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게시, 살포하기도 한다.

SNS는 나르시시즘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진선미를 언제, 어디서나, 무제한으로 투영하고, 확인하고, 자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그런데 SNS는 물리적 장벽이 거의 없이 항시 개방되어 있는 소통환경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그 가상환경이 나르시수스의 연못과 같이 자신을 표현, 확인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경우도 있고, 연못가를 떠나지 못한 나르시수스와 같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한 채 모든 생각과 감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SNS는 가상현실에 존재하는 사회환경이므로 소통의 속도와 양이 그것의 내용과 질을 압도하여 우선시되고, 가볍고 피상적인 정보일수록 더 쉽고 효과적으로 전파되는 까닭에, 소통되는 모든 정보, 생각, 감정이 피상적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수많은 나르시스트들이 수많은 다른 나르시스트들과 가상의 관계를 형성하여 피상적인 교우를 하며, 수많은 피상적 교우를 통해서 가상의 사회적 영향력을 탐미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개인적 신상, 법으로 금지된 정보,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실 등이 SNS를 통해서 유포되어 소요가 발생하는 저변에는 그러한 정보를 발굴하거나 선점하는 사람이 자신의 독보적 능력을 확인, 과시하려는 나르시시즘이 자리한다.

최근에 미국과 영국 등의 보통법 국가들에서는 배심원이 재판 중에 알게 된 피해자, 피고인 등에 관한 정보를 SNS를 통해 유포하여 문제가 되는 경우들이 생기고 있다. 증거 이외의 추가적인 혹은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구할 목적으로 SNS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정보유출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블로그를 흥미롭게 장식하기 위하여, 혹은 팔로워들에게 과시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재판 중에 알게된 사실들을 유포하고 사건에 관한 의견이나 느낌을 노출시키는 경우도 있다.

배심원이 SNS를 통해 증거 이외의 정보를 구하거나, 정보를 유출하거나, 의견과 태도를 표출하는 것은 공히 피해자, 피고인의 인권침해 등의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재판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심대하게 훼손한다.
사실을 판단하는 배심원과 판사는 공정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법정에서 신문과 반대신문을 통해 검증되고 공개된 증거에 의해서만 판단해야 하며, 모두 동일한 정보에 기초하여 판단하여야 한다(어떤 배심원은 알지만, 다른 배심원이나 판사는 모르는 정보가 있어서는 안 된다).

SNS를 통하여 정보를 구하거나 유출하는 배심원은 이미 공정한 배심원이 아니다.그 행동이 정확한 판단을 하려는 선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SNS를 통하여 신뢰성이 확인되지 않은 피상적 정보를 선별적으로 구하고 그에 준하여 편향된 판단을 할 위험이 현격히 증가한다. 또한 정보가 정확하고 사실인 경우에도, 사실판단자들이 제각기 다른 정보에 기초하여 판단을 하게 되고, 판단이 무엇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터넷 세상을 사는 현대인은 정보를 빠르고, 싸고, 효과적으로 얻고 교환하며 살아가는 까닭에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과 비용을 들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들일 수도 없다. 빠르게 구한 정보가 틀린 경우에는 다른 정보를 역시 빠르고 싸게 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의 어떤 정보는 무비판적으로 믿고, 어떤 정보는 무조건 불신하는 피상화 경향이 심화된다.

이러한 피상적인 사회환경은 나르시시즘이 꽃피울 수 있는 연못가와 같은 환경이다. 다만, 스마트폰 속의 가상연못에서 피어 가볍고 향기로워 보이는 꽃이 스마트폰 밖의 피상적이지 않은 무거운 현실로 삐져나오면 사실은 악취를 풍기는 식충식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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