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우리는 역사도 일천한 헌법재판이 다른 재판영역을 제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국제교류를 하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았는바, 그 배경으로 베니스위원회와 세계헌법재판회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베니스위원회는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 for Democracy through Law)’의 별칭으로 정례회의가 베니스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고 있다. 베니스위원회는 본래 1990년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18개 회원국으로 출범하였으나 2002년 비유럽 국가도 회원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였고 우리나라는 2006년 6월 회원국이 되었다(최근 미국도 가입).

베니스위원회는 1년에 4번(통상 3, 6, 9, 12월) 정례회의를 개최하는데 그 중 2번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한명이 정회원으로 참석하고, 나머지 2번은 법무부 대표가 대리회원(substitute member)으로 참석한다. 헌법재판소에서는 그동안 이공현, 목영준 재판관(현재 변호사), 박한철 재판관(현재 헌법재판소장)에 이어서 강일원 재판관이 정회원으로 참석해 오고 있고, 김준규 변호사(전 검찰총장)가 현재 대리회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베니스위원회는 설립 이래 구소련 붕괴로 독립한 많은 체제전환국가들의 민주 헌법 도입과정에서 자문을 제공하는 외에 선거와 정당제도, 헌법재판 등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각국의 헌법 개정안, 주요 법률 개정안 등 의제에 대한 베니스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 그 논의가 고담준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원들 간에 실질적이고도 실제적인 의견이 교환되는 실무적인 회의임을 알 수 있다.

내 경우 2013년 6월 열린 제95차 정기총회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는데 베니스위원회는 몬테네그로와 우크라이나의 헌법 개정안, 아제르바이잔의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 이집트의 결사의 자유 관련 법률 등의 안건들을 하루 반에 걸쳐서 논의하였다. 특히 마지막 안건의 경우 이집트에는 NGO가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사항 외에 활동을 할 경우 이를 처벌하는 등으로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항이 있어서 베니스위원회에서는 그 삭제 등을 담은 권고안을 냈고, 이에 대하여 이집트 법무부장관이 출석하여 이를 방어하는 등으로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동 법률(안)의 경우 당초 이집트 법무부장관이 베니스위원회에 의견 요청하였고, 베니스위원회에서는 정회원인 헝가리 헌법재판소장 등을 이집트에 파견하여 이집트 당국과 의견을 교환한 뒤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였고, 이집트 당국에서는 이를 반영하여 법률(안)을 수정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다시 수정된 법률(안)을 놓고 논의가 오고간 것인바, 베니스위원회의 의견은 몇몇 문제되는 조항들에 대해 국제기준에 맞게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베니스위원회의 논의가 실제적일 수 있는 것은, 총회에서의 실질적인 논의를 위해 미리 조사위원(Rapporteur)이 임명되어 그분들이 개정안 등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를 하고 의견서 형태로 총회에 제출하면, 이것을 바탕으로 총회에서 논의를 하고 조사위원의 의견을 그대로 채택하거나 수정 채택하는 등으로 결의를 하기 때문에 수십 건의 안건을 불과 하루 반 만에 처리하면서도 실질적이고도 효과적인 논의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베니스위원회의 3가지 주요 활동 영역 중에는 앞서 본 바와 같이 헌법재판도 포함되어 있는바, 베니스위원회는 세계헌법재판회의 체제의 출범 및 2009년 케이프타운 총회, 2011년 리우데자네이루 총회의 개최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2차 총회 폐막 후 2011년 5월 세계헌법재판회의 규약이 비로소 채택되어 영구적인 조직으로서의 세계헌법재판회의 체제가 출범하였는데, 동 규약에 의하면 유럽헌법재판소회의나 불어권 헌법재판소연합과 같은 헌법재판에 관한 지역별·언어권별 협의체에 속한 헌법재판소나 이에 상응하는 헌법재판기관(대법원 등)의 경우 세계헌법재판회의 사무국에 서면통지를 함으로써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아시아 지역에서의 헌법재판기관 간 협의체 역시 그 중요성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유럽과 미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랍에 이르기까지 모두 헌법재판에 관한 지역별 협의체 등이 있었으나 유독 아시아에서만 지역별 협의체가 없었는바, 2005년경부터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아재연합’)의 발족을 위해 노력한 것이 2012년 5월 서울 창립총회로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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