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7년의 준비기간 끝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가 개장했다. 오랫동안 동대문지역 일대에 설치되었던 공사가림막을 걷고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이 건축물은 불시착한 우주선이라는 혹평에서부터 세계적인 건축가가 디자인한 명품건축물로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는 찬사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평가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의 대중은 건축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치 않았다. 그들에게 건축은 문화라기보다는 (재)개발과 재건축, 그리고 이에 따라 오르내리는 집값과 땅값이 보여주는 숫자놀음에 가까웠다. 건축이 숫자가 아닌, 예술적 조형에 가까운 형태로 인해 하나의 문화로 대중에게 다가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쓰나미라는 별칭을 얻은 서울시 신청사가 2012년 10월 완공되었고,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최근 대형조개 DDP까지 개관하면서, 대중은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아닌 건축의 또 다른 면모를 인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건축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켰다는 긍정적인 측면의 이면에는 한국사회의 현실과 부딪히는 DDP의 부정적인 면모가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DDP가 있는 자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인 동대문운동장이 있었다. 1925년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한 동대문운동장은 1945년 해방 후 서울운동장이 되었다가, 1984년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잠실주경기장이 문을 열면서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수차례 바뀐 명칭이 증명해주듯, 동대문운동장은 오랜 세월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함께 해 온 근대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다른 화려한 대규모의 경기장들의 건립과 24시간 차량과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동대문지역이라는 입지조건으로 인해 동대문운동장은 서서히 그 기능을 잃고 쇠락하게 되었다. 2000년에 마지막 경기를 치른 축구장은 노점상들의 생계용 풍물시장과 주차장으로 용도 변경되었고, 야구장 역시 2007년 서울시 고교야구 가을리그 결승전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2007년 8월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으로 DDP의 건립이 확정되자, 동대문운동장은 2008년 5월 14일 ‘굿바이 동대문운동장’ 전시회를 끝으로 서울시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동대문운동장을 밀어내고 진행된 DDP의 자리잡기는 이후에도 그리 순조롭지 못했다. 착공 후 몇 개월 뒤 공사가 갑자기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동대문운동장 건립 당시, 일제가 묻어버린 유구와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결국 공사가 2009년 3월까지 중단되었고, 이곳에서는 서울성곽과 함께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등 여러 시기에 걸친 역사와 문화상, 건물지 및 무기제조 관련 생산유적, 연못지 등이 발굴됐다. 모든 발굴과 이전복원 계획을 수립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공사가 재개되었다.

DDP의 어두운 탄생에는 정치적 상황의 변화 또한 기여한 바가 크다. 애초에 ‘세계 디자인 메카’로 계획된 DDP는 오세훈 전 시장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었다. 한 사회의 기념비적인 건축은 그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관이 건축물에 명확하게 표현됐을 때에만 존립이 가능하다. DDP는 처음 계획에서부터 프로그램이 명확하지 않았고 공사과정에서도 프로그램이 변경됐다.

최초 의도대로라면 ‘엘리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하이엔드 디자인을 전 세계로 ‘발신’하기 위한 공간이었을 DDP는 일반 대중이 참여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세금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재정자립으로 방향을 틀면서 내부는 수익을 낼 수 있는 임대와 전시공간이 되었다. DDP는 서울시와 이를 운영하는 재단, 그리고 설계자와 사용자의 생각이 모두 다른 복잡한 태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 서울을 내세우며 무언가를 욕망했던 시장에게 필요한 것은 서울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과 세계적인 건축가의 이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세계적인 건축가는 그 대가로 동대문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매우 크고 뚜렷하게 새겨 놓았다. 하지만 건축가의 바람을 충분히 실현시킨 그 건축물의 기술적인 진일보와 시공의 완성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건축물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드는 건 왜일까? 애초 DDP에는 사용자의 욕망, 즉 서울시민의 욕망이 부재하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건축은 명확한 목적에 의한 철저한 기획과 진지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어야 한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고도 그 결과물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모든 피해는 바로 일반 시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DDP의 탄생이 공공프로젝트를 집행하는 이들의 공공건축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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