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만해도 경남엔 ‘충무’란 도시가 있었다. 1995년 1월 통영군이랑 합쳐지면서 사라졌다. 그런데 충무란 이름을 달고 충무를 지키는 음식이 있다. 충무김밥이다.

이 김밥은 일반적인 김밥과 생김새부터 다르다. 속 알맹이가 없는 김밥이다. 빨간 소시지는 고사하고, 단무지, 시금치, 당근, 어묵 등이 모두 빠졌다. 맨 밥을 맨 김으로 한입 크기 엄지손가락 굵기로 감싸 돌돌 말았다. 대신 반찬으로 오징어무침 또는 오징어어묵무침과 무김치를 따로 내준다.

포장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김밥은 김밥대로, 반찬은 반찬대로다. 충무김밥은 뱃사람들의 ‘바다 도시락’에서 유래했단다. 뱃일을 하다가 간편하게 요기할 수 있도록 충무의 아내들이 쌌던 것이다. 뜨거운 바다 볕에 상하지 말라고 김밥과 반찬을 나눈 거란다. 김밥은 어른 딱 한입 크기인데 질 좋은 김을 써서 김밥만 먹어도 맛나다. 오징어무침이든 섞박지 무김치든 간간한 맛이 김밥이랑 딱 어울린다. 오징어무침은 고춧가루와 젓갈이 넉넉하게 들어가 매콤하면서 짭조름하다. 탱글탱글 씹히는 오징어 맛도 좋다. 섞박지는 새콤하면서 아삭거린다. 김밥집 실내에서 먹기보단, 포장해 나오길 추천한다. 한적한 포구의 방파제에 펼쳐놓고 먹으면 망망대해에 떠있는 어부가 된 기분이다. 바닷바람이 코로 들어가니 더 맛나다.

여름 휴가철이면 충무김밥의 본고장 통영을 찾는 사람이 많다. 굳이 김밥이 아니더라도 남해 앞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생선회에 졸복국, 시락국, 꿀빵 등 언제나 먹을 게 넘쳐나서 그렇다. 시내 곳곳에 원조간판을 내건 충무김밥집이 많다. 본고장에 온 김에 “어디가 진짜 원조냐”며 물어물어 찾아나서는 사람도 있지만 굳이 그럴 일은 아니지 싶다. 앞서 설명한대로 충무 뱃사람들이 먹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객터미널 건너편에는 식탁 달랑 1개만 놓고 영업하는 ‘일번지 할매 충무김밥(055-643-8991)’이란 곳이 있다. 식탁이 1개밖에 없다보니 단골 위주의 포장판매를 한다. 이곳은 입보다 가슴이 더 행복해지는 김밥집. 좁은 실내 공간에 가슴깊이 와 닿는 글귀가 많다. 심지어 화장실까지 고개를 돌리면 여기저기 감동의 글귀가 더덕더덕(?)하다. ‘상대에게 걸림돌이 되지 말고 디딤돌이 되라’ ‘눈은 뜨고 입은 꾹 다문다’ 등. 주인할머니가 생각이 날 때마다 아무 종이에나 손글씨로 쓴 글이다. 맞춤법이 틀린 것도 많다. 그래도 김밥을 입에 넣고 한 구절 한 구절 곱씹다보면 ‘세치 혀’가 느끼는 맛의 감동이 머리와 가슴까지 꽉꽉 차는 느낌이다. 값은 일인분에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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