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헌법재판회의의 준비위원장인 강일원 헌법재판소 재판관

헌법재판소에서는 올해 9월 28일부터 나흘간 서울 신라호텔에서 세계헌법재판회의 3차 총회가 개최된다. 이 행사는 111개국의 헌법재판 담당 법원(헌법재판소 또는 대법원, 최고재판소)의 최고 책임자들과 UN인권이사회 등 모두 144개 기관의 책임자들이 참석하는 매머드급 대회이다. 현재 대한변협도 국제변호사협회(International Bar Association)의 2019년 아시아에서 열리는 총회를 유치하려고 노력중이다. 가을 일본 IBA총회에서 결정이 난다. 좋은 소식의 소망을 담고 세계헌법재판회의의 준비위원장인 강일원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강일원 재판관 개인에 대하여도 궁금한 것이 많지만 오늘은 재판관 강일원이 아니라 ‘세계헌법재판회의 준비위원장’을 찾아 왔다. 우선 세계헌법재판회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행사인지 간단히 설명해 달라.

베니스 위원회 주관으로 2009년에 창설된 헌법재판에 관련된 국제회의다. 베니스 위원회의 설립이념인 민주주의, 기본권 보장, 법의 지배를 공고히 하고 그 정신을 세계적으로 확대하자는 방안의 하나로 세계의 헌법재판을 맡고 있는 기관들이 모여서 그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고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따라서 베니스 위원회는 세계헌법재판회의의 사무국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 회의가 특히 의미있는 것은 헌재가 설립 시부터 깊숙이 관여하여 단순히 참가자가 아닌 회의의 주도자, 주관자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말씀하니 베니스 위원회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베니스 위원회는 별칭이다. 정식명칭은 법을 통한 민주주의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 for Democracy through Law)이다. 원래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의 산하기구로 출범하였으나 현재는 유럽을 넘어 세계적이고, 독립적인 국제법률자문기구이자 분쟁해결의 조정을 담당하는 기구로 성장했다. 이 위원회는 각 회원국에서 한명의 정위원과 대리위원이 선정되어 활동하는데 내가 정위원이고,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대리위원이다. 그 전에는 이공현, 목영준 전 재판관이 정회원이었다. 일 년에 네 번 정기회의가 있는데 내가 2번, 김전총장이 두 번씩 분담하여 참여하고 있다. 참고로 베니스 위원회로 불리는 이유는 이탈리아가 이 위원회의 본부를 적극 유치하여 사무국이 아름다운 도시 베니스에 있어서 그렇다.

강 재판관은 대법원 기조실장으로 있던 2011년 서울에서 아태대법원장회의의 실무책임자였다. 지금은 그 사이 헌재 재판관이 되어 세계헌법재판회의의 준비위원장이 되었다. 두기관의 가장 큰 국제행사를 치르는 감회를 듣고 싶다.

법원의 판사로 있을 때 1993년 미국 미시건 대학에 연수를 다녀왔고, 1994년에 대법원 사법정책 담당관으로 부임하여 주로 사법개혁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때 부수업무로 윤관 대법원장의 영어통역을 담당하다 보니 국제업무를 많이 하게 됐고,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국제업무에 많이 관여하게 되었다.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감회를 이야기하자면 1990년대의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과 지금 위상 차이를 피부로 실감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우리가 외국에서 주로 배우는 단계였는데 지금은 세계와 정보를 공유하고 오히려 우리 법제도를 수출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한국의 위상강화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2011년 유치한 법원의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 회의, 2008년 9월의 4일간 서울에서 치러진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 올해 거행될 헌재의 세계헌법재판회의,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뭔가 중첩되어 보인다. 명확한 구별을 좀 해달라.

아태대법원장회의는 이름 그대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대법원장들이 모여 사법제도에 대하여 논의하고 협조하는 사법공조 및 사법교류의 장이다. 세계헌법재판회의는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기관이 모여서 실무차원을 넘어서는 헌법재판과 관련된 큰 주제를 논의하고 협력하는 자리라서 명백히 구별이 된다. 2008년에 유치한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 때문에 오해할 수 있는데 그 행사는 우리 헌법재판소 설립 20주년을 기념해서 우리의 성과를 세계에 알리고, 그 성과를 공유하기 위하여 전세계의 헌법재판소장을 초청하여 치러진 특별행사였다. 물론 우리가 2008년에 성대하고, 성공적인 헌법재판소장회의를 치러낸 것이 베니스 위원회에 영향을 미쳐서 2009년 베니스위원회에서 헌법재판에 관한 국제회의를 탄생시킨 단초가 되었다는 점은 꼭 밝혀두고 싶다.

헌재는 그밖에 2010년 7월 창설된 아시아 헌법재판소연합의 창설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국제회의와 다른 새로운 비젼의 제시로 보인다. 설명 좀 해달라.

헌법재판회의나 다른 국제행사에는 개별나라만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 언어권역별 국제기구도 대표단으로 많이 참석한다. 그런데 아시아에는 경제협력, 정치공조에 관련된 조직이나 모임은 상당히 있으나 인권협약이나 인권재판소와 같은 인권에 관한 국제기구는 아직 없는 형편이다. 참고로 아시아를 제외한 모든 대륙은 유럽이 제일 앞서있지만 인권협약과 인권재판소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선도적인 노력이 지금의 유럽통합 즉, 유럽연합(European Union)의 모태가 된 것이다. 사실 헌법재판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20년에 설립된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가 최초의 독립된 헌법재판소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의 발전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선도적인 입장에 서 있다. 그래서 우리가 2010년에 아시아 헌법재판소연합의 창설을 주도한 것이다. 2013년 12월 기준으로 아시아 13개국 헌법재판기관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이번에 열리는 3차 총회를 일각에서는 실질적으로 창립총회라고 합니다. 이유가 뭔가.

2009년 1회 총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되었는데 “일단 모여보자”는 아이디어 차원의 모임이었다. 2011년 제2회 총회, 브라질 총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규약이 채택되었다. 세계헌법재판회의의 규범이 생긴 것이다. 그 후 처음 치러지는 헌법재판회의가 바로 이번 9월의 3차 총회이다. 제대로 모이는 첫 행사라서 실질적인 창립총회라고들 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치러지는 이번 3차 총회 유치와 관련하여 우리와 인도네시아가 경합을 하였는데 어렵지 않게 우리가 개최국이 되었다. 국력의 힘이다. 2008년 전세계 헌법재판소장들을 서울로 불러 모아 헌재 출범 20주년을 기념한 국력이 베니스위원회와 헌법재판기관들에게 자연스럽게 한국을 개최국으로 밀게 만든 것이라 믿는다.

이번 서울 총회의 주제는 ‘헌법재판과 사회통합’이다. 이 주제는 역시 베니스 위원회에서 정한 것인가. 우리 헌재에서 정한 것인가. 우리에게 매우 유효적절한 주제인데 선정 배경을 알고 싶다.

재판회의의 주제는 실무적으로는 사무국인 베니스 위원회에서 정한다. 다만, 각 회원국의 제안을 들어서 그 중에서 선택한다. 이번 주제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아이디어이다. 우리 사회는 세계가 놀랄만한 성장을 하다 보니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많은 갈등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 헌재는 그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기능을 나름대로 수행하고 있는데 우리의 경험을 전세계와 공유하고 세계의 갈등해결 경험을 우리가 배우자는 마음에서 제안한 주제이다. 다행히 베니스 위원회에서도 공감하여 채택이 되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현재 전세계 참가국에게 어떤 형태의 사회적인 갈등이 있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는지 즉, 사회통합을 이루고 있는지 우리가 질문지를 돌려 답을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이러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보고와 토론, 그리고 최종보고서가 이번 총회에서 나오면 사회통합의 좋은 전범이 될 것이라 믿는다. 사실 나도 하나의 소주제에 대하여 회의에서 보고를 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를 통하여 얻고 싶은 것(반드시 달성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헌재 입장에서는 이번 행사를 잘 치러서 우리 헌재의 위상도 높이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사회통합은 사실 우리 사회의 당면과제이다. 이번 총회를 통하여 전세계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듣고 모으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우리의 경험과 외국의 제도와 경험을 비교분석하여 나온 결론이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기여하였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요 바람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법원에서나 지금이나 국제업무를 많이 한다. 앞으로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과 같은 역할이 주어지면 기꺼이 수락할 용의가 있는가?

법원에서 일할 때 늘 판사가 나의 마지막 공직이라는 자세로 일했다. 뜻하지 않게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되었을 때도 맡겨진 소명이라 생각했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공직자의 바른 태도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혹시 질문처럼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리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지금처럼 앞으로 나가볼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바로 그 동아일보 기자에게 밥 한끼 사고 싶은 기분이다. 어떤 기자냐고? 2011년 4월 동아일보에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으로 법조계에서 강일원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뽑았던 그 기자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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