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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이 만난 사람]변호사 50년상 수상한 우리 시대 진정한 멘토를 만나다소비자 운동의 원로이자 선각자 김 동 환 변호사
인터뷰 박형연 공보이사  |  news@koreanba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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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승인 2014.03.31  11: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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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대한변협 2014년 정기총회에서 50년 이상 변호사로 일하면서 변호사 사회의 발전과 법률문화 향상에 기여한 ‘변호사 50년상’ 수상자로 김동환, 김영수, 송영욱, 이세중, 한춘희, 정지철, 최익균 변호사가 선정됐다. 그중에서 직접 총회에 참석해 수상하신 분은 김동환·김영수·이세중·송영욱 변호사 네 분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1934년생인 김동환 변호사님께서 청년변호사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수상을 하고 계신다. 인상적이었다. 건강한 선배를 보는 것은 행복하다. 내 나이 올해 만으로 오십이다. 나도 작년에 변호사 20주년 기념품을 서울회로부터 받았는데 과연 나도 30년 후에 저분들처럼 강건할 수 있을까. 옛말에 유명해지려고 하지 말고 오래 살면 유명해진다더니 이분들이 그러한 분들이다. 과연 50년을 건강하게 변호사 활동을 해오신 분들의 힘의 원천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대표로 김동환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교대역 6번출구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고 계셨다. 더욱이 큰 아들인 김시현 변호사(연수원 14기)와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이 또한 큰 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이 여든이 넘어 건강하여 아들과 함께 사무실에 출근하는 행복한 대선배를 만났다.

고향이 평북 신의주로 나온다. 그런데 고등학교는 경북고등학교를 나왔다. 어찌된 것인가?
고향은 평안북도 구성이다. 강감찬의 귀주대첩 승전의 바로 그 곳이다.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가족들과 함께 월남했다. 월남 후에 아버지가 법무부 교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시게 돼 이사를 무척 많이 다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각 3곳씩 다녔던 것 같다. 고등학교만 봐도 부산고, 대전고, 경북고를 모두 다녔다. 그리고 6·25때 부산에 피난 온 서울대학교에 시험을 치러 서울법대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대구에 피난 온 고려대학교에도 시험을 쳐서 붙었다. 고민하다 서울대에 진학했다.

판사를 몇 년 하지 않고 서울에서 개업을 하였다. 판사의 길을 접을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나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현재를 열심히 사는 사람이지 특별히 내가 ‘나중에 무엇이 되어야 겠다’ 하는 식의 야심은 부족한 사람이다. 6·25 전쟁시절에 법대를 갔으나 고시를 해서 판사가 돼야지 하는 생각도 별로 없었다. 어느날 한 친구가 대리출석을 부탁하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고시공부하러 간다고 했다. 그 참에 나도 고등고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내가 고시 7회인데 그때 시험이 6개월 연기되는 바람에 시험에 붙을 수 있었다. 다 팔자소관이다(웃음). 대학 3학년 때이다. 군법무관을 마치고 판사가 되었다. 법관을 몇 년 해보니 그 월급으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교정직 공무원이라 집안도 여유롭지 못했다. 그때 마침 김종표 변호사가 함께 개업을 하자고 권유 하길래 법복을 벗고 1963년에 개업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변호사를 50년째 해오고 있다.

지금 젊은 변호사들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그때는 변호사 할만 했는가. 다시 태어나도 변호사를 하고 싶은가?

아들과 함께 지금도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니 요즘 변호사들이 고통스럽게 변호사 업무를 하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내가 변호사를 하던 시절은 어려운줄 모르고 변호사를 하던 시절이다. 요즘 나보고 변호사하라면 못할 것 같다. 내가 평생을 해온 변호사와 요즘 변호사는 다른 개념같다. 우리는 평생 사건을 찾아간 적이 없다. 의뢰인이 나를 찾아와서 사건을 부탁하는 것이다. 요즘은 보니 대형로펌에서도 사건을 기다릴 수만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 개의 로펌들이 경쟁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의뢰인을 찾아다녀야 한다고 한다. 개인변호사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이력을 보면 많은 사회활동을 했다. 보람있고, 의미있는 활동을 소개해 달라.
소비자운동을 한 것과 약관심사위원장을 한 것이 제일 기억에 난다. 내가 실향민이다 보니 남북적십자자문위원을 했고, 적십자사 법률고문도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활동이 어찌보면 다 인연과 우연에서 시작됐다. 소비자운동의 대모라는 정광모씨가 한국일보기자로 법원출입을 할 때 알게 되었다. 변호사를 하고 있을 때 찾아와서 소비자보호법 초안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휴가를 반납하고 열심히 일본법 등을 찾아서 법률안 초안을 만들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소비자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소시모, 사단법인 소비자시민모임의 초대 회장을 1983년에 맡았고, 1988년에는 10개의 소비자단체가 결성한 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까지 했다. 그 소시모 회장할 때 약관규제법의 초안작성을 부탁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약관심사위원장도 하게 된 것이다. 다 팔자소관이라는 생각을 한다. KBS이사도 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도 했다. 둘다 상당히 중요한 자리인데 솔직히 어떤 계기로 추천을 받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모든 자리에 경쟁이 심한 요즘 변호사들이 보기에는 정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소비자운동의 원로요, 선각자이다. 소비자운동에 대한 철학이 궁금하다.
지금은 소비자운동이 큰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그 초석을 잡는데 일익을 해서 보람스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조직이 하는 것과 사람이 하는 것은 다르고, 소비자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은 사람이 아닌 조직이 중심이 되어 즉,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건강한 사회운동이 된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운동이 직업이 되어서는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사회운동을 직업처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틀이 좋으시다. 정치를 할 마음이나 권유는 없었는가.
몇 번의 권유가 있었다. 공화당 시절 대학동기인 사무총장이 김양균 변호사와 나에게 강력하게 출마를 권유했는데 “내가 한동네에 수십년 살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도 안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그리고 유신때 유정회 비례대표의 제안도 받았지만, 팔자에 정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미련없이 거절했다. 강신옥 변호사 사건이나 몇 개의 시국사건에 변호사로서 관여했는데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한 것이지 정치적인 성향과 의도는 없는 사람이다.

아들들을 판사와 변호사로 잘 키웠다. 자식교육에 대하여 한말씀 해달라.
아들들에게 법조인이 될 것을 권유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법조계로 온 것 같다. 나는 자식들에 대하여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다. 인생은 다 제 팔자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식들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키웠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대구에 살 때 “고등고시를 보러 서울에 가면서 표 좀 사주세요” 했더니 퉁명스럽게 고시를 “‘사법과’ 보냐 ‘행정과’ 보냐” 하고 물으셨을 정도이다. 그래도 속으로는 관심이 가셨는지 발표날은 나보다 먼저 결과를 알아서 기쁘게 알려주신 것이 생각난다.

무척 건강하시다. 건강비결은 무엇이고, 좌우명을 알려달라.
특별한 비결은 없다. 운동은 친구들과 어울려 골프를 자주 친다. 고등학교를 여러군데 다녀 친구가 많은 것이 다행이다(웃음). 사건처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무실도 매일 나오려고 한다. 특별한 좌우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꼭 말하라면 내 앞에 당면한, 닥친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내앞의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건강하고, 변호사 이외에 여러 가지 활동도 많이 한 것 같다. 다 팔자소관이라는 생각이다(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어준 홍보과장과 함께 아들인 김시현 변호사가 사주는 점심을 먹으면서 김동환 변호사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를 마쳐서인지 자신이 판사하던 시절, 변호사 하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법조계의 재미난 야사들을 많이 들었다. 그 보석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 대선배들이 사라지기 전에 법조의 야사들을 채록하여 기록해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관의식이 용솟음쳤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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