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일본 변호사들을 만났을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국제중재에서는 디스커버리(Discovery)와 같은 증거 조사 절차가 얼마만큼 일어나고 있는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송에 있어 영미법계와 대륙법계 간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곳이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디스커버리만 하는데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 소송을 하다가 회사가 망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하니,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는 대륙법계 변호사로서 우리식대로 하다가 문서를 잘못 다루어 낭패를 보게 되면 어떻하나 하는 일종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 법 시스템 하에서는 소송을 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문서 중에 나에게 유리한 것만 제출하면 되는것이 기본이지만, 일단 영미법계는 문서제출절차가 있고 서로간에 해당 분쟁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문서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다면 국제중재에서는 어떻게 증거제출이 이루어질까요?

국제분쟁이 생겼을때 소송으로 가게 되면 어떤 나라의 법원에서 진행되는지에 따라 이미 정해진 소송 절차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국제중재는 소송과 매우 유사하지만, 기본적으로 당사자 자치를 바탕으로 좀 더 효율적으로 분쟁을 해결하자는 마인드가 기본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훨씬 더 유연하게 절차가 진행되고 영미법계나 대륙법계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방식이 일반적으로 채택됩니다. 즉 국제중재에 있어서는 대륙법과 다르게 문서제출요청절차가 채택되더라도 그 범위가 미국식 디스커버리보다 상대적으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실 디스커버리는 미국 소송에서 사용되는 용어이지 국제중재에서는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대신, 디스클로저(Disclosure) 혹은 문서제출절차(Document Production)라고 불리웁니다.

싱가포르 국제중재원(SIAC)규칙 제16.2조는 “중재판정부는 모든 증거의 관련성, 중대성 및 증거능력을 결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국제상업회의소(ICC) 규칙 제 25.5조를 보면 “중재 진행시 어느 시점에서든 중재판정부는 당사자에게 추가적인 증거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중재기관의 규칙들은 증거를 어떻게 채택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고 기본적으로 중재판정부의 재량에 맡기고 있습니다. 2012년도에 퀸 메리대학과 화이트 앤 케이스 로펌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62%의 답변자 중 절반이상이 국제중재에 있어 문서제출신청이 이루어진 적이 있다고 답변하였고, 이러한 문서제출신청은 대륙법 중재보다 영미법 중재에서 3배 이상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문서제출신청에 따라 제공된 문서가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하여는 약 59%가 4분의 1 이상의 케이스에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교환된 문서가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디스클로저가 이루어지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 할 것인지는 보통법계 국가에서도 나라마다 조금씩 입장차가 있습니다. 미국이 아주 철저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라면 영국은 디스커버리 규칙 개정을 통해 증거는 분쟁과 관련 있는 것(relevant)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material)일 것을 요구합니다.
싱가포르 대법원은 Dante Yap Go v Bank Austria Creditanstalt AG 판결에서 디스커버리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반드시 두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하나는 그 증거가 관련성이 있을 것, 두 번째로는 관련성이 입증되었다고 하더라도 소송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문제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쪽 당사자가 영미법계에서 오고 다른 한쪽은 대륙법계에서 오는 일이 다반사인 국제중재에서는 중재판정부가 어떤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문서제출을 인정해 주는 범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이러한 쟁점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어진 것이 IBA 규칙입니다(IBA Rules on the Taking of Evidence in International Arbitration). 위에 소개한 퀸메리-화이트앤케이스 서베이에 따르면 약 85%가 이 IBA 규칙이 유용하다고 답변하였고, 60%의 국제중재사건에서 이 규칙이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60% 중에 약 53%가 IBA규칙을 가이드라인으로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 7% 정도가 합의로 이 규칙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기로 하고 중재사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제중재, 국제소송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국이 당사자인 사건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송을 미국에서 하게 될지 중재를 싱가포르에서 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문서관리 능력은 정말로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기업들은 변호사 비용을 쓰는 것을 아까워 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변호사를 조기에 개입시켜 적절한 대처를 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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