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통해 공감할 수 있는 기회 제공해야

몇 년 전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영화 ‘도가니’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원작자, 또 ‘봉순이 언니’, ‘즐거운 나의 집’ 등의 작가로도 알려진 공지영 작가가 대한변협을 찾았다. 지난 20일 여느 때보다도 붐볐던 역삼동 변협 중회의실에서는 공지영 작가의 ‘공감- 문학과 인생’ 강연이 진행됐다.
공 작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집필을 위해 구치소를 방문했던 얘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우행시의 집필을 위해 구치소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저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어요. 저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영치금이었죠. 당시 서울구치소의 정원은 4000명이었습니다. 그 중 1년 내내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사람은 1000명 가량이었습니다. 분명 구치소안에서도 돈이 필요할 터인데 많은 수용자들이 일년에 5000원도 후원받지 못하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단면을 본 것이지요. 그날 이후 저는 12년간 매달 한 번씩 구치소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어 공지영 작가는 인간의 여러 가지 사회적 본능 중 가장 중요한 본능은 ‘이야기’에 대한 본능이라고 언급하며, 이야기를 통한 ‘공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모두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라는 것들이 매우 잔인합니다. 계모가 아이들을 죽이려는 이야기, 무능한 아버지와 계모가 합작해 아이들을 버리는 이야기, 콩쥐팥쥐, 헨젤과 그레텔 등을 아이들에게 들려줍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사랑받은 기억’만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럴까요? 원시 부족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그들의 언어와 부족의 탄생설화, 영웅설화 등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대대로 전해지죠. 이들은 왜 이야기를 전승시키고 있는 것일까요? 이야기가 가진 어떤 특성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그 답은 이렇습니다.

이야기는 다음 세대들에게 ‘공감’이라는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에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죠. 아이들은 그 인물을 통해 공감하게 됩니다. ‘해님달님’의 엄마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나의 엄마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으로 상상한다는 겁니다. 그 공포와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죠. 이것이 이야기가 주는 가장 큰 교육적 효과입니다.

얼마전 이야기에 대한 EBS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습니다. 그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경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너무나 강렬해서 한 번 들어오면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이야기 속의 사람을 사랑하게 돼서 그렇습니다.”

공 작가는 ‘공감’을 통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사회의 단절을 해소하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형수를 방문하면서 제가 작가로서 주시했던 부분은 바로 ‘공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겁니다. 얼마 전 말레이시아 항공기 실종사건이 있었죠. 그 사건을 접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사람이 많이 죽었네, 안타깝군, 얼른 찾아야 할 텐데’ 하고 대부분 다른 일에 집중하셨을 겁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만일 제가 키우는 강아지가 아침에 아프다면, 전 하루종일 강아지를 걱정하면서 보냈을 겁니다.

다시 구치소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제가 만난 사형수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형수는 60대의 어떤 남자였습니다. 정말 사소한 다툼으로 한 사람을 죽이고, 그 목격자 둘을 더 살해하고, 그러다보니 이렇게 될 바엔 나에게 못되게 했던 사람을 다 죽이자 마음먹게 됩니다. 이 사형수는 고아로 자라 작은아버지 부부에게 길러졌습니다. 어릴적 자신을 학대했던 작은아버지 부부를 살해하러 갔다가 붙잡히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형수, 범죄자들은 공통적으로 스킨십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이것을 언어로 표현하면 ‘엄마가 없습니다’ 입니다. 꼭 엄마가 아니더라도, 이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따뜻함을 주었던 사람이 있었더라면, 이 사람이 이렇게 범죄자로 자랐을까요? 이 사람이 저에게 악수를 청했을 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인간의 체온을 느껴본 게 언제였을까?’ 이러한 사람들은 ‘부자는 천국에 살고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죠. 부자들도 아프고 외롭고 힘들다 설명해줘도 믿지 않습니다.
반대로, 부자들에게 소외된 이들은 아프고 외롭고 힘들다 말하면, 관심이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에 대한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합니다. 이 단절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사법연수원에서 강연할 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검사든 변호사든 어떤 자격이라도 좋으니, 딱 하룻밤만이라도 구치소에서 지내보시라고. 그러면 수용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거라고요.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죠.

공감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미래는 굉장히 어두울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문학, 즉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수없이 변형되고 있습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영화, 뮤지컬 등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공감하고, 끊임없이 감정이입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해주세요. 겪지 않으면 모릅니다. 어떤 복지나, 어떤 숫자보다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아이들과 스스로를 범죄로부터 예방해주는 가장 큰 약이 될 것입니다.
날마다 공감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 공감, 역지사지에 대해 생각해 보실 수 있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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